시나브로 바깥은 봄

동네 길가에 핀 벚꽃

by 세번째 삶


오랜만의 외출. 외출이라 봐야 동네 시장이다. 장을 볼 때도 자차로 가고 들러야 하는 곳만 들러 뒤도 안 돌아보고 마치 죄인처럼 최소한의 동선만 종종거리며 다녔다. 늘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있는 시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접촉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오늘은 자주 이용하던 마을의 공간에 공유할 몇 개의 물건을 두러 들렀다. 거의 모든 기관과 모임이 문을 닫거나 취소되는 바람에 몇 달간 발걸음을 하지 않던 길이다. 여느 때처럼 가려던 목적지만 생각하며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던 찰나. 내 시야를 장악하고 발걸음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벚꽃이 팝콘처럼 펑펑 터졌다.


눈보다 빠르게 앞으로 걷던 내 발이 주춤거리더니 다시 뒤를 향했다. 머리가 명령하기 전에 이미 내 발이 꽃무리를 기억했다. 몇 걸음을 되돌아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켰다.


아아, 이토록 아쉬운 봄이라니. 길가에 핀 꽃조차 돌아볼 여유 없이 조바심 내는 봄이라니. 언제인지 벚나무의 가지들을 너무 많이 쳐버려서 작년에 비할 바 없이 초라한 벚꽃 잔치지만 이 한순간을 놓칠 세라 사진으로 한 장 담아 놓는다.



동네 길가에 핀 벚꽃


코로나 19 사태로 자발적 자가격리일 만큼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바깥공기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긴 시간만에 밖에 나가보니 나만 아직도 겨울 옷을 입고 있다. 달력은 이미 2월 지나 3월까지 뜯어졌는데, 나의 체감 시간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활짝 핀 벚꽃 한 무리에 문득 고개 드니 시나브로 바깥은 봄이다.





모든 꽃 축제를 취소하고 오지 말라고 해도 꽃구경 인파가 몰려든다고 했다. 어느 곳에선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유채꽃밭을 갈아엎어 버린다고도 한다. 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목소리와 별개로 나 하나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 어두운 터널이 좀 더 길어질까 걱정된다.


봄을 기억하는 꽃들은 언제나 시간을 지킨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길가에도 꽃은 피어난다. 유명한 꽃잔치에 가지 못해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가까이 있어 업신여겼던 것들을 돌아보고 작은 것에 기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소확행은 멀리 있지 않다. 시장에만 나와도 볼 수 있는 꽃 무더기에 감사하다. 이렇게 봄이 다 가버릴까 봐 초조한 것도 사실이지만 길가의 꽃이라도 돌아볼 여유가 있음에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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