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한 번의 비밀

<이 몸은 고양이야> 쿠샤미 선생처럼 생각하기

by 세번째 삶

"당신 지난달에 버스 한 번 밖에 안 탔어?"


남편이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다가 내게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2월에 버스를 한 번 밖에 타지 않았다는 사실에, 정말로 밖에 안 나갔구나 싶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카드 명세서에 내가 교통카드 이용한 내역도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예전에 꼼꼼히 살필 때에는 나도 알았던가? 요즘 가정 경제를 남편에게 맡기고 신경 안 쓰다 보니 그런 것들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불현듯 남편이 내가 어디 돌아다니는지도 알려면 다 알겠구나 싶어 뜨끔했다. 아니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뭐가 찔린 걸까. 남편은 이어서 물었다.


"근데 버스를 타려면 왕복은 탔어야지, 어딜 갔길래 한 번이야?"

"그래? 한 번 밖에 안 탔어?"

"응, 버스 한번, 1,450원."

"모르겠네. 밖에 안 나간 지 하도 오래되어서. 어딜 갔었지?"


1월에는 그래도 이런저런 모임도 있었고 설도 있어서 꽤 나다닌 것 같은데. 밖에도 못 나가고 집 안에서 왔다 갔다 한지 너무 오래된 듯하여 2월이 까마득하다. 뭘까, 어디에 버스 타고 갔다가 걸어온 걸까? 아님 걸어갔다가 버스 타고 온 걸까? 평소 시장에 가면 그런 패턴이긴 한데. 시장에서는 주로 조금이라도 저렴한 마을버스를 이용하는데. 마을버스 가격은 아니니 시장은 아닌 것 같고. 아니 어딜 나간 기억이 없는데 뭐지? 버스 한 번 탄 것이 큰 일도 아닌데 한 달 넘게 별 일 없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거기에 꽂혔다. 바로 눈 앞에 있던 달력으로 눈을 돌렸다. '어라? 2월이 없는데? 아무리 3월 달력이지만 2월까지는 나와 줘도 되는 거 아니야?' 하며 나쓰메 소세키 <이 몸은 고양이야>의 이름 없는 고양이 말투로 투덜댄다. 그제야 지난달이 나오지 않는 달력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새 달력에는 지나간 달이 쓰여 있지 않았다. 언뜻 들으면 지나간 달이 쓰여 있는 달력이 어디 있나 싶겠지만 몇 년간 걸어두었던 달력에는 현재 월이 커다랗게, 그리고 바로 전 월과 바로 다음 월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3월 달력을 보면 2월과 4월의 달력이 작은 글씨로 참고하란 듯이 적혀 있는. 새 달력의 두장이나 뜯어 낸 지금에서야 이 달력에서는 지나간 달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날은 되돌아보지도 말라는 거야 뭐야. 현재 달과 앞으로 다가올 두 달을 미리 보여주려는 나름의 의미를 담은 달력일 것이지만 우선 내가 익숙하지 않으니 불편하다. 다음 달이야 달력을 뒤로 넘겨 보면 볼 수 있지만 지나간 달은 달력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니. 요즘 같은 시대에 스마트 폰이 있는데 달력이 무슨 필요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새 달력의 변화를 3월도 훌쩍 넘어서 알게 된 것이 멋쩍기도 해서 어물쩍 달력 탓을 해 본다.


매년 새로운 해가 되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모든 감각을 늘어뜨리고 1월부터 2월까지는 여유롭게 보낸다. 겨울 방학 내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뒹굴며 긴장이 필요한 일을 하지 않다가도 3월이 될 무렵이면 저절로 삶에 탄력이 생기고 아이들의 개학에 맞춰 나도 뭔가 시작하곤 했다. 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지 십 년 째니 나름의 패턴이 생긴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아이들의 3월 초 개학이 미뤄졌다. 그러다 보니 3월도 2월의 연장이었다. 그렇게 3월을 맞고 생각 없이 부욱 뜯어버린 달력에서 금방 지난 2월의 흔적을 찾으려다 어디에도 없음에 당황한 것이다. 아직 3월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2월을 끝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창 밖의 햇살은 벌써 봄이다. 허망하게 가버린 2월이, 1월이라고 별반 다를 바는 없었지만 4년에 한 번 오는 2월의 29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3월 달력에서 지워진 2월처럼 낯설고 서운했다. 이러다 3월도 2월처럼 녹아버릴까 불안하다. 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야 제대로 3월이 되고 봄이 올 텐데.




쓸데없이 진지한 <이 몸은 고양이야>의 쿠샤미 선생처럼 나는 버스 타고 어딜 갔다가 걸어온 걸까, 달력은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생각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죽이다가 문득 2월 초에 도수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던 것이 생각났다. 설 전에 몇 번 가고 설이 지나고 처음 간 것이었다. 아직은 코로나19의 기세가 그리 심하지 않아서 받던 치료는 마저 받아야지 하고 갔던 것 같다. 버스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었고 도처에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말을 듣고 병원 앞 약국에 마스크를 사러 갔었다.


약국의 마스크 매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스크의 종류가 너무 많아 어떤 걸 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마침 그때 마스크 납품하시는 분이 마스크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품절 사태라더니 아직은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KF80이니 KF94니 하는 것도 잘 몰랐고 그냥 평소에 쓰던 걸로 사면되겠지 싶어 일반 마스크 열 개에 2천 오백 원인 마스크 한 봉과 브랜드 마스크 3개들이 3천 오백 원짜리 한 봉을 샀다. 그때 그거라도 좀 더 사둘걸 하는 마음이 든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지금은 필터가 문제가 아니라 일반 마스크도 구하기 어렵다니.


그날 남편이 일찍 퇴근했다면서 치료가 끝난 나를 데리러 병원 앞으로 차를 가지고 왔었다. 버스를 한 번 밖에 타지 않은 문제의 날이 바로 그 날인 것이다. 그 일의 원인은 자기였으면서 나에게 왜 버스를 한 번만 탔느냐고 물은 남편에게 웃음이 난다. 나만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니라 안심이다. 그 뒤로 코로나19와 아무 상관없는 병원인데도 왠지 찜찜한 마음에 도수치료도 미루고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야 버스 한 번의 의문이 풀렸다. 몰라도 아무 상관없었지만. 쿠샤미 선생 집에 사는 고양이가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하여튼 인간들이란 힘들여 밥 먹고 쓸데없는 데에 힘을 낭비하고는 하지. 나처럼 햇살을 받으며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면 편할 것을. 저러니까 쿠샤미 선생처럼 위장병이 걸리는 거라니까.' 타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