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의 방황을 마치고

책 떠나 살기

by 세번째 삶

알림 톡이 왔다. 희망 대출한 책의 반납일 알림이었다. 지난주에 이미 한번 연장을 했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보름 동안 책을 펼치지 못했다. 솔직히는 열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면 얼마든지 읽을 시간이 있었지만 맘먹고 손에 잡지 않으니 그게 점점 힘들어졌다. 책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갑갑했지만 그보다 먼저 게으름이 나를 물들였다.


머리맡에 책이 없으면 허전하고 늘 손에 잡히는 곳에 책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같은 불안이 있었다. 병원에 가면서 들고 간 두 권의 책을 겨우겨우 몇 장 읽고 집으로 돌아온 뒤 책은 그대로 놓여있다. 읽지 않을 테면 반납이라도 할 걸. 대출 연장해 두고도 책을 펼치지 않았다.


처음 하루 이틀은 오늘 책을 한 장도 못 읽었네, 이래도 되나? 며칠 후에는 오늘도 안 읽었어, 그런데 괜찮네?

또 며칠이 흐른 뒤에는 귀찮은데 뭘 읽어, 그냥 자자.

이런 식으로 마음이 느슨해졌다. 읽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음은 내가 만든 것이리라. 의도했든 아니든 매일 읽는 것이 습관으로 잡혀 있을 것이고. 그런데 그게 허무하게 보름 만에 깨져버린 것이다. 아무 걸림돌도 없이, 너무 쉽게. 활자 중독이라 생각했었는데 책이 아니라도 폰으로 충분했기 때문일까.


보름 동안 책 대신에 폰과 TV와 영화에 시간을 쏟았다. 그런데 봐도 봐도 허전한 마음이 짙어졌다. 영화 보고 글 쓰는 걸, 내 맘이 내키는 대로 쓰는 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그것도 끌리지 않았다. 영화 보고 나서 끝. TV는 끝없이 채널이 올라가는데 아무리 돌려봐도 재미있는 게 없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폰에서 보는 뉴스나 정보는 몇 번 보고 나면 계속해서 복붙 기사들이었다. 다시 책 읽을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마침 책을 반납하라는 톡을 받으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낼모레 반납하라는데, 이제 연장도 못하는데. 올해 들어 빌린 책 세 권 중에 한 권도 완독 하지 못했다. 이렇게 반납하고 나면 그 책은 다시 빌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다시 빌려 읽고 싶은 책이라 해도 선뜻 다시 빌리지는 못하게 된다. 어떡하지? 오늘 밤 한 권이라도 다 읽어볼까? 미안하지만 그냥 포기할까?


책을 꺼내어 펼치니 오랜만에 감이 돌아왔다. 책에서 읽는 활자의 느낌이 새롭다. 마치 일부러 멀리한 듯, 누가 시켜서 안 읽기라도 한 듯, 책을 보자 반가움이 밀려왔다.


세 권의 책 중 두 권은 심리학 관련 책이었는데 한 권은 심하게 나의 예상과 취향이 달랐다. 아마 그 책 때문에 흥미가 급격히 떨어졌나 보다. 나머지 한 권이라도 흥미를 느낄 때 계속 읽었어야 했는데. 심리학 책은 읽으면서 치유되는 것 같다가도 내가 오히려 그 속으로 침잠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래서 더 금방 식어버렸나.


남은 한 권은 새 학기에 인문학 강의 예고를 했던 책이다. 강의가 열릴지 안 열릴지 모르지만 미리 한번 읽어볼까 하고 빌렸는데 너무 무심했다. 두꺼운 책의 반은커녕 십 분의 일도 못 읽었다. 병원에서 병실 불을 일찍 끄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 책 읽을 만한 밝기의 복도 의자에 앉아 읽었던 책. 혼자서 킬킬 웃음소리를 낮추고 웃으며 읽었는데. 그 꿀맛이던 재미를 보름 동안 잊고 있었다.


다시 책을 열었다. 이름도 없는 고양이가 제법 내 마음을 끈다. 고양이로서 인간을 관찰하고 들려주는 이야기가 은근히 재미있다. 인간들이 설에 먹는 떡을 몰래 하나 먹으려다 입이 붙어 두 발로 깡총깡총 뛰는 모습이 상상되어 웃기면서도 안쓰러웠다. 고양이를 키우고 난 뒤 읽으면 또 다르다는 그 책을, 오늘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 몸은 고양이야.
이름은 뭐, 아직 없고.

<이 몸은 고양이야>
나쓰메 소세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