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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Mar 23. 2023

침묵의 무게

돌아온 어느 봄날에

벌써 일 년. 아니 겨우 일 년.

내 글이 낯설다.

나는 그만큼 변한 것일까 내가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혼란과 싸우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내 안에 가득 찼던 수다스러움은 점차 가라앉았다. 무지의 입은 가벼웠고 침묵의 무게는 가중되었다. 두 개의 내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여행기를 써보겠다고 나는 어떤 여행을 하는 사람인가를 떠올리다가 그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여행에 필요한 조건은 내가 처한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얼마나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내가 좀 드러나면 어떤가. 사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할 터인데. 애써 외면하려 해도 사회 통념은 그렇지 않다는 전제가 또 나를 망설이게 한다. 그 전제까지도 나도 모르게 나를 만들어 온 보이지 않는 시선과 규범이라는 생각이 들면 도망칠 곳이 없어지고 차라리 입을 다물게 된다.  어디까지 생각을 밀고 나가야 나는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에게 자신을 간파당하는 일이다.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한편 내가 붙잡고 있는 '나'라는 것이 그다지 견고할 것도 없고 고상할 것도 아닌데 무얼 그리 숨기려 하느냐는 질문에 폐부를 찔린 것 같은 건 아직 내 자의식이 팔팔하게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 많은 사람이 남의 이야기처럼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지 않을까. 고작 일 년 전에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낄 때면 내 글을 읽는 독자도 나처럼 내 글을 읽고 나를 규정하겠구나 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든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내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고, 책을 읽고 사유함으로써 나는 변할 것이고 그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침묵의 무게를 들어 올리고 한 줄의 글을 쓸 용기를 내었을 때, 내 자의식이 나서서 그것들을 부숴버리지 않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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