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번째 삶 Nov 13. 2019

신영복 「청구회 추억 」

문화동을 추억하며

    문화동은 내가 살던 동네다. 내가 어릴 적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할머니 댁 문간방이었다. 부모님이 윗동네께를 문화동이라 불렀고 대화에 자주 등장했었다. 집 위쪽으로 가파른 언덕길이 있었는데 언덕을 올라가면 저녁 마실 다니던 아버지 친구 집이 있었고 그쯤이 문화동이었던 것 같다. ‘청구회 추억’에서 ‘청구회’는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따왔다고 했다. 할머니 댁 근처에 새로 생긴 지하철역 이름이 ‘청구역’이었던 게 기억났다. 문화동이 그 기억 속의 문화동이겠구나, 새삼 반가움마저 들었다. ‘청구회 추억’ 속에는 부모님과 나들이하던 장충체육관이니, 동대문체육관이니 하는 곳들이 등장한다. 동대문체육관은 예전 동대문운동장이 아닌가 싶은데 동대문운동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문화동이라는 동네 이름도 사라졌다. 나는 ‘청구회 추억’과 더불어 문화동을 떠오르게 하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께 읽었다. 내 부모님에게도 이십 대 시절이었을 1966년의 풍경들을 상상한다. 나는 부모님의 그 시절을 모르고 이제는 알 수도 없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저 머릿속으로 그려 볼 뿐이다. 곤궁한 청구회 아이들의 삶과 크게 다름없었을 내 부모님의 젊은 시절 그 동네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청구회 추억’은 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소풍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아이들과의 만남의 기록이다. 1966년 처음 만남부터 1968년 선생이 구속될 때까지 아이들과의 인연을 소상히 적고 있다. 문화동에 살던 남루한 차림의 여섯 아이들과 섞여 놀고 싶은 마음에 ‘첫 대화’의 말을 신중히 골랐고, 다행히 마음을 열어준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아이들과의 만남은 아이들의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 덕에 ‘청구회’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모임의 목적은 그저 만나서 놀고, 어려움에 처한 그들의 처지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가르치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이화여대생들을 초청한 봄소풍에서 “가난한 옷차림을 낮추어보는 시선도 없었고, 가난한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구김새도 없이 ‘신나게’ 놀았던 하루였다.”라고 기록한다. 아이들이지만 동등하게 모임의 일원으로써 존중하며 즐거운 모임을 이어간 것이다. 가난한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으로서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고민하면서도 막연한 동정심을 경계했다. 그렇게 애정을 갖고 있던 ‘청구회’와의 만남은 선생이 구속되면서 끊어지게 된다.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뒤에 실려 있다가 2008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때 쓴 신영복 선생의 후기는 갑작스레 끊어진 만남으로 인한 미안함과 용서를 비는 마음 등 그 후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글을 읽어 나가며 처음에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즐거이 추억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곤궁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며 그러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을 보람되게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글을 마칠 때쯤엔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지금도 좋은 인연이 되고 있다는 결말을 기대했던 것도 같다. 글의 마지막에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의식적으로 상정하고 명명한 이름이 아니냐는 ‘희극적’ 질문을 ‘엄숙히’ 추궁받았다.”라는 부분에서 이 글을 쓴 것은 ‘청구회’가 어떤 모임이었는지 알리기 위해 쓰인 것인가 생각했다. 단지 어린이들과 만나던 순수한 모임인데 사회주의 집단이라며 억지 부리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풍자하고자 쓴 글인가도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랐다. 이 글은 신영복 선생이 1969년 교도소에서 쓴 글이다. 사형 선고를 받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다가 청구회 어린이들을 떠올리고 교도소의 재생휴지에 적었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선생의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삶의 회고였던 것이다. 우리가 무겁게 기억하고 역사적으로 분명히 남겨져야 할 이야기임에 틀림없지만 나에게는 글이 그려주는 그 시절의 이미지로 남았다. 냄비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소풍을 다녔을 내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게 했고, 내 어린 시절의 골목들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들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던 부모님의 그 시절을. 형편 때문에 진학 못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과 그래서 너무 일찍 결혼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그 시절의 어려움들을 이 책 속에서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