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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Nov 20. 2019

낡고 일관성 없고 잡지처럼 산만하다

'침이 고인다'를 읽다가

낡고 일관성 없고 잡지처럼 산만하다
- 침이 고인다, 김애란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어딘가 부족하고 무언가 어설픈 내 공간들에 이처럼 딱 맞는 표현이 있을까 싶었다. 내가 갖고 있던, 바로 나를 표현하던 내 공간이었다. 잡다한 내 욕심을 모두 드러낸 것이었음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늘 2% 아쉬웠던 것은 낡고 일관성 없고 정리되지 않던 나의 정체성이었다는 걸 이 문장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비움을 욕망하면서 비우지 못해 산만해져 버렸던 것을.


   이렇게 김애란의 글을 읽을 때면 별 것 아닌 일상을 별 것이 되도록 써낸 문장에 놀라곤 한다. 내가 표현할 수 없던 내 감정들을 덤덤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그의 글 중 내가 처음으로 읽은 '바깥은 여름'만큼 흡인력 있지는 않았다.

    단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가끔 짧아도 좋아하는 글이 있지만 이 책에 엮인 단편들은 뭔가 이야기가 진행되려다 만 느낌이랄까. 장편을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사건을 구성하기 전에 늘어놓은 느낌이랄까. 끝까지 읽어내는데 약간의 힘이 필요했다. 2007년 출판된 책이라서 그런지 '바깥은 여름'에 담긴 이야기의 탄탄함에 비해 약간 느슨한 느낌이 든다.


  '침이 고인다'에 함께 엮인 여덟 편의 단편은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지나는 어두운 터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이 속해 있는 방, 공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공간을 가진 자와 갖고 싶은 자, 갖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
  노량진의 고시생이나 재수생, 또는 학원강사 등 각 편의 주인공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옴니버스로 연결될 법하다. 비슷한 주제의 단편들을 묶어 놓은 이유가 따로 있겠지만, 처음에는 공감되었던 얘기가 비슷하게 반복되어 약간의 피로감을 느낀다. 나의 노량진 고시생 시절이  생각나서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추억일 수 있으나 오래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작가의 강점인 잘 익은 문장을 만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제목과 같은 단편 '침이 고인다'에서 특히 인상적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어쩌면 유통 기한이 정해진 안전한 우정이 그녀를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몰랐다. 하루란 누구라도 누구를 좋아할 수 있는,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사해질 수도 친절해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 나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 알게 된 사람과 친밀함을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하루라면,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면 어쩐지 근사한 모습으로 나를 꾸며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모습보다 더 친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계속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안전하게.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우리들은 얼마나 얄팍한가, 입맛이 씁쓸해진다.

그녀는 후배를 안다고 생각했다. 후배의 습관 중 부정적인 목록을 발견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 사람과 친한데, 잘 아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이런 말 해서 미안해요."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친하다고 해서 다 잘 아는 건 아니에요. 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말조차 친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함부로 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단정 짓는  건, 지나친 자기 신뢰이며, 카프카가 표현했듯이 자기 신뢰는 그저 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어서, 고독해지고 싶다. 푹신푹신한 고독감 속에 파묻혀 휴일이면 온종일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아무렇게나 입은 채, 아무 때나 일어나, 아무거나 먹어버리고 싶다.

  -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나도 집에 묻혀 있다. 자발적으로 고독하게 꼼짝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본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씩 다시 나를 일으킬 힘이 차오른다. 그렇게 집은, 혼자만의 공간은 내게 맘껏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을 줌으로써 보약 같은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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