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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04. 2019

오사 게렌발의 그래픽 노블, 시간을 지키다

<시간을 지키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7층>

    그 책을 만난 곳은 작은 만화방이었다. 지방 소도시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만화를 그리 즐기던 편은 아니라서 내가 아는 만화는 별로 없다. 벽을 모두 가린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을 한번 쓱 훑어보는데 어떤 제목이 툭하고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시간을 지키다>, 오사 게렌발 지음. 표지에 그려진 2017 스웨덴 만화협회 유르훈덴상 수상작이라는 붉은 동그라미가 눈이 들어왔다. 엄마들은 이런 수상작에 관심이 많다. 뭔가 특별해 보이는 그림을 보고 속으로 '득템!'을 외치고 꺼내 들었다. 시간을 지킨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 궁금해하며 펼친 책의 분위기는 표지에 드러난 분위기보다 더 어두웠다. 훌렁훌렁 넘기며 보아도 금방 읽고 말 만화책은 아니구나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픽 노블. 사실 다양한 책과 친하못한 나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걸 올해 처음 알았다.

    올해 초 독서모임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세 권씩 미친 듯이 읽어치울 때 만났다. 데이비드 스몰의 <바늘땀>이 내가 읽은 첫번째 그래픽 노블이었다. 토론 주제 책이라 도서관 대출을 하려는데 시립 도서관에 몇 권 없었다. 희망도서대출을 하려고 신청했는데 만화책이라고 거절되었다. 응? 만화책이었어? 뭔지도 모르고 책 제목만  가지고 신청했더랬다. 어렵사리 책을 빌렸는데, 그래픽 노블이라고 했다.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 진지하고 철학적 주제를 다룬 단행본. 그림이라 쉽게 읽힐 것 같지만 곱씹으며 봐야 다. 두 번째로 읽은 그래픽 노블은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그리고 세 번째로 오사 게렌발의 책을 만났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다. 오사 게렌발의 책은 세 권 있었다. 세 권을 한 번에 다 빌려갈 것인가, 한 권씩 빌려갈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세 권을 모두 가방에 넣고 무겁지만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와 읽었다. 한 권을 다 읽고서 세 권 모두 빌려 온 나를 칭찬했다.

 





<시간을 지키다>는 오사 게렌발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과 아이들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의 관계. 어머니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고 아버지는 그녀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마지막까지도 대체 아버지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냉정한 걸까 궁금했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유를 찾는다는 건 우리가 기대하는 보편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정서적 불편함을 견디기 위한 것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방치되는 학대를 경험했다. 언제나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해 분노한다. 시간을 지킨다는 건 뭘까. 궁금했다.

    이어서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와 <7층>을 읽었다. 내가 읽은 순서는 출판된 역순이다. <7층>은 세 권 중 가장 먼저 그려졌다. 그녀의 대학 졸업작품이라고 했다. 자신이 대학에서 사귀던 남자에게 조련과 폭력으로 학대당하다가 극적으로 벗어난 이야기였다. 요즘 흔히 말하는 데이트 폭력인데 자신을 사랑해준다는 사실만으로 점점 더 그에게 구속되고 길들여져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폭력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고통받으면서도 스스로를 구제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다 결정적 사건으로 대학의 한 교수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로부터 도망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스웨덴의 이야기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도움을 요청 했을 때 믿을 만한 기관이나 사람들이 있을까. 제대로 도움받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는 사실에 입맛이 쓰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오사가 좀 더 어릴 적의 이야기다. 이것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지만 주인공의 이름은 다르다. 철저히 자신을 외면하고 배제하는 부모와의 관계. 늘 화내고 애원하고 결국에 자신이 사과해야 끝나는 가족과의 무한 루프.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감정을 감추는 것만이 가족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자신을 구속하는 남자 친구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에이 설마  너의 부모님이 그러겠어?' 하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부모라고 해서 모두 자식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바늘땀>의 데이비드 엄마도 그랬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에게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찾아가 차례로 그 아이들을 만나 데려오며 스스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사실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더이상 애쓸 필요 없다고.








    세 작품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금씩 다르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결국엔 비슷한 이야기다.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한 번씩 자신의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에 빠지면 약속한 시간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것과 연관 있는 것 같다. 이제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만 애쓰는 패턴을 청산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간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삶은 늦춰지지 않고 자신에게 오는 죽음도 두려워 않고 받아들여 시간을 지킨다의미가 아닐까.


    이 책들을 읽으며 나는 나의 부모를 생각했고 나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어느 정도는 내게 냉정함으로 상처를 주셨고 나도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내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것이다. 오사는 현명했다. 상처를 스스로 껴안아 아이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멍들었다. 그래서 자신을 자꾸 들여다 보게 되었다. 오사는 책에서 더이상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제 와 부모님에게 사과를 받으려 하면 할수록 자신이 더 상처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안고 보듬어 치유한다. 나도 아직 아물지 않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혹여나 내 상처를 아이들에게 다시 주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이제 나도 그녀처럼, 상처 받았던 나를 찾아가 보듬어주어야 한다. 작고 약하던 그 아이와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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