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를 읽고 돌아보는 나와 엄마의 지난날.
도서관에서 서성이다 발견한 김가지작가님의 그림에세이책 <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를 읽으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김가지 작가님의 첫 번째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읽고 엄마랑 같이 청소일을 한다는 게 기억에 남아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면 엄마와 함께 살고 청소일을 하며 사는 삶을 이야기 한다.
작가님의 나이는 나랑 많이 차이 나지 않아서 더 이해가 잘 갔다고 해야할까.
내 또래 여자 사람의 엄마와의 이야기라니.
보통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엄마랑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데 같이 살고 또 일을 같이하면서 더 가까워진 내용을 담고 있다.
어른이 된 후에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지.
나는 대학을 졸업 한 후에 꽤 오랜시간 동안 엄마가 내 곁을 떠나갈 때까지 나는 엄마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처음부터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입시 실패와 암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빠의 일이 겹치면서 나는 도저히 사회에 나갈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또 나의 오랜 시간 앓아왔던 피부 질환까지.
처음엔 나도 취업도 해보려하고 이런 저런 노력을 했지만 사회에 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었다. 돈을 버는 일에는 나는 몹시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 있게 되었다. 점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게 익숙해지고 어느새 그냥 집에서 사는 사람. 그냥 살아있는 사람 그 정도의 인간이 되어있었다.
엄마는 가정주부셨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일본어 통번역도 하시고 머리끈 만들기, 신문 돌리기 등 이런저런 온갖 부업도 다하시다 언젠가부터는 집안일을 하셨다. 엄마는 사회에 나가고 싶어하셨다. 그렇지만 너무 긴 시간 집에서 있으시다보니 엄마도 사회생활을 결국 못하셨다.
그렇게 두 성인이 집에 같이 들어앉아 있게 되었다.
같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동료애를 쌓아 왔다면 나는 두 정신이 피폐해진 환자 둘이 집에서 머무르게 되면서 생활하는 많이 다른 이야기다.
아무래도 김가지 작가님이 훨씬 더 건강하고 생산적인 관계가 되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 큰 어른이 둘이 계속 같이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사이가 좋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와 나 각자가 가진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 우리를 낳고 사는 이 삶에 엄청난 후회화 불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친구도 만들지 않고 동네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그저 집에서 책만 읽었다.
그렇게 고립된 채 긴 시간 살면서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그 삶에 대한 하소연을 나에게 하였다. 그저 옆에 있던 사람이 나였기에.
엄마란 사람의 하소연을 듣는 건 힘든 일이다. 그 어떤 누구의 험한 말보다 사실 듣기 힘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이야기 아닐까.
근본적으로는 아빠가 원인일 것이다. 아빠는 다정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감을 주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엄마와 우리에게 인색했던 사람.
그런 사람과 살면서 괴로웠고 또 일찍 죽으니 그것대로 괴로움을 안겨주어 엄마는 자신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결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엄마를 대할 때 엄마를 잘 대해야 된다는 강박같은 게 있었다. 사실 나는 엄마를 무척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9살부터 생긴 너무 심각한 피부 질환으로 나는 가족의 걱정덩어리였다. 나의 질환으로 인해서 항상 가정이 밝은 느낌은 아니었던. 그래서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거기에 입시 실패에 돈을 못버는 성인이 되어버렸으니 나는 엄마를 대할 때 항상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며 살았다.
반대로 엄마는 내가 이렇게 된게 애초에 자기가 나를 낳았기 떄문이라는 근본적인 죄책감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과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큰 다툼이나 싸움은 없었다.
아무래도 계속 같이 있다보니 서로의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늘 엄마랑 같이 살았지만 스무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엄마란 사람에 대해 엄마의 인생과 엄마 이전의 인생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이는 좋았지만 항상 돈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젊음을 통과해서 차분한 사람이었지만 비록 내가 사회에 나가지 못했지만 나는 아직 젊었다. 30년 가끼운 세월의 차이에서 오는 에너지와 생각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생기더라고. 그때 나는 느낀 게 나이차이 많이 나는 사람과 결혼하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와 산 시간을 모두 행복했고 후회하진 않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봤을 때 사회보장제도라든지 사회시스템을 좀 더 일찍 알아서 엄마로부터 독립했으면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를 생각하면 한 편이 무겁고 슬퍼지고 또 고맙고 죄송하고 복합적인 마음이 든다.
그냥 다 큰 성인이 되어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 나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서 좋았다. 보통은 또래 친구가 더 좋고 혹은 이성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하느라 엄마랑 멀어지는데 다시 엄마와 제일 친한 친구 되기라니.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사회로 나가지 못한 나는 엄마가 정신적으로 온전히 기대어 살았다. 엄마가 살아갈 이유었다. 엄마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하며 위태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던 지난날들.
엄마가 사라진 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서 이젠 엄마가 사라져도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