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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Jun 12. 2023

[단편 소설] 눈물점

 내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내 눈가에 콕 박혀 있는 눈물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살면서 울 일이 많은 '재수 없는 아이'."

 

 <눈물점>


 저기 걸어오는 저 남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름은 '이재훈'이다. 내 이름을 밝히기에 앞서 이 사람 이름을 먼저 밝힌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우선 그의 이름이 꽤 근사하다는 것. 어디에서도 튀지 않고 적당히 지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그의 이름을 나는 그만큼이나 무척 좋아한다.

 "재훈아."하고 부를 때의 나의 입 모양은 양 끝이 슬며시 올라가 버리곤 한다. 물론 나는 그의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본 적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지만 단 한 번도 내가 불러본 적은 없는 그의 이름. 그냥 곁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거울 속의 눈물점을 바라보기 전까진... 그래 어쩌면 모든 게 이 점 때문일지도 몰라.' 이 점을 빼버리면 나에게도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혜숙 님." 피부과 간호사가 내 이름을 건조하게 불렀고 나는 마침내 의사에게 나의 눈물점을 디밀었다. 의사는 나의 큼직한 눈물점에 적지 않게 당황하면서도 순간 매우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게 날 때부터 이렇게 컸단 말입니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점의 유구한 역사를 설명하려니 참으로 머쓱했지만 "네." 단답형으로 인정해 보였다. 의사의 눈은 어느 순간 빛나고 있었다.

 "조직 검사를 한번 해보죠. 이 정도 크기라면 잘못 손을 댔다간 얼굴에 상처가 남을 수도 있겠어요." 무려 조직검사라니! 하찮은 나의 점에 진심인 그 의사에게 감사했고 일주일 뒤, 나는 점을 빼기 힘들 것 같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게 된다. 눈물점과의 이별은 이토록 힘든 것인가? 나의 재훈이에게 재훈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홀로 밤을 지새우며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나를 원망한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나의 '점'을 원망한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나의 '점'을 원망하며 있는 힘껏 째려봐준다.

 "뭘 그렇게 꼬라봐?"

 아, 이런. 내가 째려본 것은 나의 점이었건만 하필 그 위치에 있던 좌상 노파가 나에게 대뜸 말을 던진다.

 "그게 아니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설명하기 애매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려는데...

 "점 때문인가?"

 노파가 내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

 "내가 빼줘? 그 점."

 의사도 거절한 점이었다. 그런데 거리의 노파가 빼주겠다며 호언장담하다니!

 "빼주실 수 있나요?"

 "그럼, 빼주다마다. 게다가 매력점으로 바꿔줄 수도 있지."

 한술 더 떠서 눈물점의 재앙을 매력점의 축복으로 바꾸어주겠다니! 나는 더는 망설일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제가 뭘 드리면 되는 거죠? 눈물점을 빼주신 대댓가로요."

 "점. 눈물점이 그 대댓가야. 그거면 충분해."

 다음 날 아침 얼굴에 있던 눈물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아주 작은 매력점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날...

 "언제 같이 도서관에서 과제하지 않을래?"

 재훈의 제안으로 우리는 단 둘이 만나게 되었고 몇 번의 데이트 끝에 마침내 사귀게 된 것이다.

재훈과의 연애는 생각했던 것만큼 달콤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견되어 있는 비 소식처럼 피할 수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 병원이야. 지금 와줄 수 있어?"

 재훈의 힘없는 연락에 병원으로 달려갔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재훈의 처참한 몰골을 보며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우리 헤어지자."

 재훈은 그런 나의 모습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남자친구의 비극적 사고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냉혈한. 나의 매력점은 한순간에 비인간적인 면모를 발휘하였고 나의 재훈을 앗아갔다. 나는 노파를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은 다 '눈물점' 때문이다. 나는 나의 눈물점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재훈에게 눈물로 사죄하고 그의 곁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노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이했다. 내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 해봤어?"

 노파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대체 뭘 해봤냐는 것인가? 그것은 눈물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양파로 두 눈을 문질러는 봤는지 마늘을 빻으며 눈을 크게 뜨고 버텨봤는지 하품을 연달아 수백 번은 해봤는지.... 자신에게 아무런 노력 없이 찾아온 나를 질책하면서 노파는 이만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냥 돌아갈 것이었다면 내가 이곳을 찾아왔겠는가? 나는 재훈을 되찾기 위해 나의 증오하는 눈물점을 되찾기 위해 노파의 좌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이쿠!"

 노파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동안 노파가 수집해 온 수많은 '점'이 좌판에 발랄하게 쏟아졌다. 물사마귀, 쌍점, 붉은 점.... 그 점 중에 나의 소중한 눈물점을 발견하고 나는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후드득! 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물점을 손에 꼭 쥔 채 달리는 내 얼굴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차가운 빗물 속에서 마침내 뜨거운 한 줄기의 눈물이 얼굴 위로 흘러내렸을 때 마침내 나는 환하게 웃으며 재훈의 병실 문을 열었다. 여기, 널 위해 뜨겁게 울 수 있는 혜숙이가 돌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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