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프라이드(The Pride)를 보고
"이건 일종의 이야기잖아.
너와 나, 우리 사이에 이야기.
우린 이야기가 있어.
우린, 우린 역사를 가졌다는 거야. 올리버"
영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에서 10년동안 사랑받아온 연극 *프라이드(The Pride)*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
많은 연극을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시처럼 귀를 감싸는 대사는 처음이었습니다.
그저 한 편의 공연이 아닌, 삶을 껴안는 ‘속삭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왜,
꿈에서 막 깨거나, 막 잠들려고 할 때
갑자기 사는 게 그냥 무지 시시해지면서
아… 이렇게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럴 때 있잖아.
사는 이유보다 이불이 더 포근해질 때.
그럴 때, 난 누군가를 부를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봐.
내가 누군가를 부르거나, 아님 날 불러줄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으면서 시작되는 변화.
그게 사는 이유가 아닐까?”
삶은 때때로 너무 무겁지만, 동시에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보이죠.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누군가 조용히 이름을 불러주는 따뜻한 한마디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듭니다.
"매미소리와 나무들을 관통하는 바람소리, 그리고 나뿐이었죠.
어떤 목소리로였다고밖에 표현이 안 돼요.
어떤 일관적으로 귀로 들리는 그런 종류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속삭임이었습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글쎄요, 그냥 그렇게만 들렸어요.
아니, 울렸어요.
괜찮아질 거라고.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것이고
지금의 잠옷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50년 후, 500년 후에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더 행복하고 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야."
이 장면을 떠올리면, 소리가 아니라 진동처럼,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이 남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필요했던 거였겠죠.
프라이드는 성소수자의 이야기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상처받고, 흔들리고, 그래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요.
그래서 이 연극은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 한마디가, 오랜만에 가슴 깊숙히 찾아든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