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련'을 보고
1952년에 쓰여지고 1953년에 공연되어 호평을 받은 아서 밀러의 『시련(The Crucible)』을 예술의 전당에서 보고 온 길이다. 이제 막 공연 후기를 적으려는데, 가뜩이나 인간의 믿음과 존엄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무거운 작품을 보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참에, SK텔레콤 해킹 사태 때문에 "단말기 지정 서비스 등록하라", "마이보안에 들어가서 여신거래 차단 서비스를 신청하라"는 지인의 폭풍 문자까지 쏟아진다. 마음이 조금 울적해진다.
장장 3시간에 걸친 이번 공연은 개인의 양심과 존재를 위협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아서 밀러의 강력한 고발이었다. 무대는 더없이 간결했고, 음악도 꼭 필요한 순간에만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배우들의 대사는 지나치게 고함과 절규로 가득해, 보는 내내 "왜 저렇게까지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걸까" 싶은 괴로움을 느꼈다.
시기, 질투, 애정, 복수
인간사에 흔히 떠도는 감정들이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양심과 인간성을 짓밟는 모습은 한없는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공연을 힘겹게 마주한 후, 우연히 연등행사를 보게 되었다.
밤하늘 아래 각양각색의 연등을 손에 들고 사물놀이 소리와 함께 이어진 다채로운 행렬. 유모차 연등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어르신들팀, 교구와 모임별로 각자의 색깔과 모양으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 선한 평범한 모습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가슴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회악으로 피투성이가 된 주인공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또 사람 덕분에 이렇게 감동을 받다니. 이 감정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교차한 하루였다.
하지만, 오늘 밤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던, 평범하지만 한없이 따듯했던 그 얼굴들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잔잔히 밝혀줄 것 같다.
이 마음을 읽어주는 당신이 있어,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