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직유 Feb 07. 2023

행복의 씨앗, 불행의 씨앗 모두 내 안에 있다

한 번의 실수로 20만 원을 태웠다.

다가오는 4월, 함께 요가스터디를 하는 친구와 인도로 요가수련을 떠나기로 했다. 나와 친구 모두 즉흥적인 성격이라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결제했다. 인도에서 수련할 요가원을 정한 다음, 항공권을 먼저 결제했다. 빨리 알아볼수록 저렴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스카이스캐너에서 검색하니 두 명이서 60만 원대로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항공사는 베트남 항공사 '비엣젯'이었다. 어디선가 비엣젯 항공사의 안 좋은 일화를 들었던 기억이 스쳤지만, 저렴하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문제의 초석이 여기서 놓여졌다.


친구는 재빠르게 항공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동일한 노선의 항공권을 알아봤다. 50만 원대로 구매할 수 있었다. 아싸! 쾌재를 불렀지만 여권번호를 몰라서 바로 결제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항공권 결제에 여권번호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때 결제했어야 했는데.. 젠장) 하루 이틀이 지난 후, 우린 각자의 공간에서 카톡으로 연락하며 항공권 결제를 시도했다. 그 사이 항공권 가격이 80만 원 가까이로 훌쩍 올라있어서 급하게 결제하게 되었다. 친구가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가 갤럭시 핸드폰 결제를 시도했는데 이마저 실패했다. 이건 분명 신의 경고였다. 여기서 멈췄어야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한국인은 포기를 몰랐고, 끝끝내 노트북 전원을 켜 결제를 성공시켰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무구했던 우리는 드디어 인도에 가는 게 실감이 난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우린 이 순간이 비극의 시작이었음을 깨달았다.

 

좌) 친구가 알아본 항공권 / 우) 내가 알아본 항공권


친구가 비엣젯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항공권 예매를 할 때는 달러로 표시되었는데, 내가 검색할 때에는 베트남 동으로 표시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금액대일 거라 생각하며, 따로 환율을 알아보지 않고 결제를 진행했고, 이게 화근이 된 것이다. 달러로는 254달러 한국돈으로 84만 원이었던 게, 베트남 동으로 38,188,000동 자그마치 204만 원이 된 것이다. 웃긴 건,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결제 직후도 아니고 운전해서 집으로 가던 길에 불현듯 불안해져서 검색해 보고 나서였다. 인간의 직감이란..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패닉에 빠졌다. 결제하기 전에 내가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감에 빠졌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 차를 갓길에 세워둔 채 항공사에 전화를 했다. 한참 간의 통화연결음 끝에 상담원과 연결되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환불이 가능한지 물었다. 환불은 가능하지만, 항공사 포인트로만 환불 가능하며, 수수료가 무려 20만 원이나 발생한다고 말했다.


띵-


머리가 울렸다. 204만 원에서 수수료 20만 원 빼면 184만 원. 달러로 결제하면 편도 84만 원, 왕복 168만 원이니까 그래도 환불을 하는 게 이득이었다. 하.. 한순간의 실수가 나비효과처럼 태풍을 몰고 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순식간에 공중분해돼버린 20만 원에 괜스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상담원에게 물었다.


"근데 같은 홈페이지에서 본 건데 달러랑 베트남 동이랑 왜 이렇게 금액 차이가 많이 나나요?"


상담원은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띵-


또 한 번 머리가 울렸다. 우선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친구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카톡도 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명이 감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남짓이 흐르고 나서야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나는 이미 폭삭 늙은 상태였다. 친구에게는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이니 수수료를 물겠다. 환불을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고맙게도 10만 원씩 나눠서 부담하자며, 자신에게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이 있다 말했다. 젊음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환불신청을 하고 (전화로는 환불신청도 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서 환불 신청 후, 이메일까지해야했다.) 환불받은 항공사 포인트로 다시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뿐이었다. 항공사 포인트도 1년 안에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고 했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워워 이 모든 것을 자초한 건 나였으니 참아야 하느니라..


친구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비엣젯 항공사에 대한 여러 글들을 읽었는데, 크레딧 환불 또한 한 달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진작 검색해 보았다면 좋았겠지만, 이런 생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칠렐레 팔렐레 나갔던 정신이 다시 박혀있을 리 없으니 필연적으로 일어날 실수였다. 나에게 벌어진 이 상황을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고민했다. 쓰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창의력을 총동원한 결과, 수강료로 퉁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앞으로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조금 더 신중하게, 차분하게 행동하라는 값진 교훈을 얻었을뿐더러, 주식으로 잃은 돈에 비하면 20만 원은 비교적 저렴한 강습료였다. (^^.. 언젠간 오르겠지...) 실제로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 밤, 명상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서 알아봤던 워크숍 수강료가 마침 20만 원이었다. 그 워크숍을 들은 셈 치면 될 터였다. 심지어는 무료로 진행하는 온라인 새벽 명상 모임을 찾아 그 모임에 들어갈 참이었으니 열심히 명상 수련만 하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마음에 번뇌와 혼란이 가득하니 명상 수련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기이고, 정말로 이젠 명상 수련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최근 불교 교리에 흥미가 생겨서 운전할 때마다 경전 해설을 들어서일까? 그 돈이 원래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래 세상에 내 것은 없었으니, 그 돈도 잠시 나한테 머물렀을 뿐이다. 내 것이 아니니 빼앗기거나 잃는 것도 없고, 그냥 잠시 맡아두었던 것을 세상에 돌려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베트남 국민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손해를 입은 것이든 어떻든 간에 마음 편한 게 제일 아니겠는가?


아직 인도로 출발하지도 않았지만, 벌써 이렇게 파란만장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아마도 이번 사건이 예방접종이 아닐런지? 가서 얼마나 많은 변수를 마주할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마음의 번뇌를 겪을지 예측도 되지 않는다. 예측되지 않는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울고 웃을 생각을 하니 설렘이 잔뜩 차오른다. 고지식한 내가 '무질서 속의 질서'라 불리는 인도에서 약간의 융통성을 얻어오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마음에 짐이 있거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이 글을 읽고 '아, 내가 쟤보다는 낫구나'하고 위안을 삼거나, 마주하고 있는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얻어가길 바란다. 내 앞에 놓인 상황이 어떻든, 내가 행복을 느낄지, 불행을 느낄지는 나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기왕이면 우리 모두 행복의 씨앗에 물을 주는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