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도에 도착했을때는 여기서 어떻게 한 달을 보내나 한숨이 멈추지 않고 착잡했는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 며칠 지나고 나니 늘상 여기 살았던 것 마냥 널부러져있다. 역시, 불평이 많고 까탈스럽게 굴면 몸을 굴려야 한다. 피곤하니까 만사가 귀찮아져서 의도치 않게 관대해진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
인도에 오기 전부터 블로그, 카페, 유튜브를 뒤져 온갖 정보를 얻고, 불필요한 걱정에 시달리며 감정 소모를 했더랬다. 여자가 혼자 오기에 너무 위험하고, 위생이 안 좋아서 물갈이(설사)를 하고, 수질이 많이 안 좋고, 원숭이한테 지갑을 뺏길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길에서 마주친 소 뒷발에 차일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들.. 인도로 배낭여행을 오는 여행객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아쉬룸에 박혀서 하루종일 수련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관하다고 본다. 아니 너무 피곤해서 이틀째 밖을 못 나갔는데 어떻게 위험하냐구요;
새벽 5시 45분부터 수업 듣고 아침 먹고 잠깐 방에서 쉬고, 다시 수업 듣고 점심 먹고, 또 수업 듣고 저녁 먹으면 밤이다. 씻고 자야 됨. 5시에 일어나야 되니까.. 물론 점심시간 포함해서 쉬는 시간이 30분~1시간 있어서 밖에 나갔다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낮잠 자느라 나갈 생각도 못했다. 다음 주쯤엔 나갈 수 있으려나..
경험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첫날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 밤 잠을 설치고, 둘째 날 깔끔 떤다고 시내에서 큰 타월이랑 숄을 사가지고 이불과 몸 사이에 겹쳐서 덮었다. 아주 어리석은 아이디어였다. 요가원 이불은 (아마도) 세탁을 (언젠가) 했을 테지만, 시장에서 산 숄과 수건은 (아마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이후로 세탁되지 않은 것 같다. 왜냐면 이불을 덮으면 께름칙하긴 해도 잠이 솔솔 잘 오는데 타월을 덮으면 몸이 가려워서 잠이 오지를 않으니 시장에서 온 타월이 더 더러운 게 분명하다. 뭐든 새로 산 건 빨아서 쓰는 걸로..
내심 기대했지만 요가원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매일 손빨래를 해야 하는데 차마 화장실 바닥에서 빨래를 하기에는 찝찝하고, 세면대에는 나프탈렌이 있어서 속옷정도는 괜찮지만 옷가지는 빨래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나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15분 거리의 시내로 가서 마켓들을 돌아다니며 물었다. 시원찮은 영어로 온몸을 동원해 허우적거리며 설명했지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었다. 빨래 바가지(?) 쇼핑은 다음날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첫째 날 들어갔던 마켓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했다. 판매용이 아닌, 물건 진열을 할 때 사용하는 사각형 넓적한 바스켓이었다.
마켓에서 파는 원통형 바스켓은 빨래를 넣고 밟기가 좀 애매한데, 이 녀석은 샤워할 때 바디샴푸 뿌려서 발 밑에 두고 조물조물 밟으면 된다. 바스켓을 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마켓 주인을 껴안고 싶을 정도였다. 인도에서 지내다 보니 참으로 소박해진다. 부족함 없이 편안하게 지내다가, 익숙함에서 멀어지고, 낯설고 불편한 생활에 처하게 되니 그간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누리던 것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그동안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꼭 필요한 건 아니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음식이 가장 염려되서 컵라면이랑 초코바, 맥스봉 소세지까지 챙겼는데, 나 사실 인도인인가 싶을 정도로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 컵라면은 아직 하나도 먹지 않았고, 초코바는 단백질바만 가져왔는데 5개정도 먹었고, 맥스봉은 3개쯤 먹었다. 오.. 꽤나 많이 먹은 것 같기도.. 잘 챙겨 온 것 같기도...
마트에 진짜 엥간한 건 다 있다. 와 이게 있다고? 싶은 것도 있다. 침낭라이너도 사고, 물티슈도 사고, 병따개도 사고, 망고랑 과도도 사고, 빨래비누도 사고...
리시케시 만물상
4월의 리시케시는 춥다
인터넷을 찾아봤을 때는 다들 분명히 덥다고 했는데.. 4월 초라 그런 건지 춥다.. 일교차가 심하다. 낮에는 반팔만 입고 돌아다녀도 괜찮은데 잘 때는 두툼한 이불이 없으면 잘 수 없을 정도로 춥다. 저녁에 밖에 나갈 때에도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외투를 입어야 한다.
사랑이 고프면 인도로..
무슨 말이냐면... 인도에는 파리가 참 많다. 수업을 듣고 있으면 어느샌가 내 몸에 와서 들러붙어있다. 저리 가라고 훠이훠이 해도 가는 척 다시 돌아온다. 나 좋다고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존재가 필요하다면 당장 인도로 오시길.. 명상 수업 중에 한창 명상에 집중하고 있어서 얼굴에 붙은 파리를 쫓아내지 않고 가만 두고 지켜보았다. 한참을 내 얼굴 곳곳을 관광하고, 급기야 콧구멍 동굴 속까지 들어가려기에 참지 못하고 쫓아냈다.
파리뿐만이 아니다. 인도에는 정말 개가 장난 아니게 많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다. 삼보일배가 아니라 삼보일'개'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쭉한 배를 한 채 참으로 처량한 표정을 짖는 개들을 보면 마음이 일렁이는데, 쓰다듬지는 못한다. 어디 한 곳에서 개싸움이 나면 동네 개들이 떼 짖어서 짖으며 몰려가는데 그 광경이 정말 무섭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자여.. 인도로 오라.. 파리와 개, 소, 구걸하는 아이들과 사두(고행자)들이 모두 당신만을 바라보고 쫓아갈 테니.
글을 쓰다 보니 자정이 지났다. 망했다. 아니 그런 말을 쓰면 안 되지. 큰일이다. 내일도 쉬는 시간에 외출하기는 글렀다. 그래도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느낀 것들을 기록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내가 사람들의 기록을 보며 참고했던 것처럼, 누군가 인도여행을 계획하는 이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