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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Apr 02. 2023

길을 물으면 오토바이를 태워주는 나라

내 생의 첫 오토바이

인도에 도착한 지 3일이 되었다.


델리에서 하루,

리시케시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낸다.


하노이-델리 비행기 옆자리 Shweta

델리공항에서 데라둔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친해진 Ramnek

길에서 만난 인도인 여행객

식당에서 만나 친해진 Odaly


그냥 스쳐가는 인연은 없다던데,

모두 태어나기 전부터 운명으로 정해진 인연들이라던데,

각자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거라던데,

우린 서로에게 어떤 역할이었을까


-


나는 삼십 년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다. 주위에 타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운전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내가 인도에 와서 오토바이를 타다니!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마치 인생처럼.


어제 어렵사리 요가원에 도착하고 나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야 할 것 같아 요가원 직원에게 마트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구글맵에 나와있는 여러 마트들 중 어디가 나은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한 인도인 청년의 오토바이에 몸을 싣게 되었다. 요가원 매니저가 막 나가려던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경계심 많고 겁 많은 내가 이렇게 낯선 사람 뒤에 타다니.. 상황에 쏠려 나는 어느샌가 오토바이 뒤에 타있었고, 아주 좁은 골목골목과 내리막을 세차게 내려가 마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탈길을 브레이크 잡지 않고 달린다.. 내리막에러는 오토바이 시동을 끈다.. 와우..


오늘 점심에도 같은 마트에 들렀다.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면 참 좋겠지만, 자꾸만 필요한 게 생겼다. 장을 보고 나서 점심 식사를 하다 미국인 친구 Odaly를 사귀게 되었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어제 오고 갔던 기억을 되짚어가며 돌아갔는데 길을 잃었다. 막다른 길을 만나 약간 당황한 채로 이리저리 골목을 빠져나가니 운명처럼 눈앞에 숙소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허름했던 숙소가 동화 속 궁전처럼 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갠지스 강 락슈만줄라 브릿지 - 비틀즈 아쉬람

저녁에 새로 사귄 친구와 옆동네로 툭툭을 타고 가서 강가(갠지스강) 비틀스아쉬람에서 열리는 행사를 구경했다. 메일 아침 저녁으로 큰 행사가 열리는데, 강가에 감사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라고 했다. 엄청난 인파가 모여서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고, 같은 기도를 외우는데 그 사이에서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는 갠지스강에 대한 감사, 그 순수한 마음이 한 곳에 모이니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 벗어놔도 아무도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숙소를 두 번이나 잘 찾아갔으니 자신감이 조금 붙었고, 지도를 보지 않고 가 보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리 없었다. 평생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길치가 갑자기 각성할 리 없는데, 자만했다.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지나가던 인도인 커플에게 길을 물었다.


남자는 자신들도 여행객이라고 말했다. 잘 모르는 것 같아 다른 이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남자는 거절했다. (?) 나의 도움 요청 철회가 철회당했다. 자신의 지도를 켜서 검색을 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와 청년과 다양한 인도인들에게 힌디어로 물었다. 나의 아쉬람을 찾아주는 게 어떤 퀘스트로 여겨진 듯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길을 물었다.  그가 활동(?)할 동안 가만히 서있는 게 뻘쭘해서 빨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샌가 또 낯선 인도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앉아있었다. 두 번째 오토바이 라이딩이었다.


첫 번째는 친구 또는 직장 동료의 부탁이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정말 생판 남이었다.  자신의 캐리어를 내팽게쳐둔 채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 아쉬람을 찾아 준 인도인 여행객과 낯선 동양인 여성을 등 뒤에 태우고 안전 귀가 시켜준 인도인 청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에서 낯선 사람의 오토바이에 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낯선 사람들을 잔뜩 경계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이들은 모두 친구인 것 같았다. 이렇게 자상하고 따뜻한 곳이라니, 인도에 대한 인식이 한순간 전복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분명한 역할이었는데, 나는 도움을 받는 역할이기만 했는지 궁금하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음으로써 뿌듯함이나 보람을 주는 역할이었을까?


벌써 둘째 날 밤이 지나간다.

내일은 오리엔테이션과 입학식 세모니가 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내일은 또 어떤 판타지 같은 일들이 벌어질지. 몹시 기대가 된다.

처음 길거리에서 소를 봤을 때, 판타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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