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느라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왜 침낭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후회 중이다.
침구는 도대체 언제 빨았는지 알 수가 없고, 배게에서는 땀에 절은 시큼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일 당장 등산용품점에 가서 침낭을 사 오려 한다. 이렇게 예기치 못한 소비를 또 하게 된다만, 당장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도 후각에 예민한 사람이었던가? 벌써부터 몰랐던 나를 알아가고 있다.
더러운 침구보다 나를 더 잠 못 들게 만드는 건 북소리다.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 누구네 집 아무개가 결혼이라도 하는 걸까? 이때까지 괜찮다가 자정이 가까워지니 북소리와 뭐라 뭐라 외치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진다. 인도에는 개와 소가 많다. 열 발자국만 걸어도 길거리에서 개와 소를 마주칠 수 있다. 그 개들과 소들은 밤잠도 없는지 계속 싸우고 울부짖는다.
아직 요가 수업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내가 이렇게나 나약했던가.. 지금껏 나 스스로를 나름 털털하고 어디서든 잘 자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다 틀렸다. 나는 깐깐 쟁이에 깔끔쟁이, 예민한 속물이다. 차라리 땀이라도 왕창 흘리면서 운동을 하고 싶다. 시간이 여유로워서 편히 쉬고 싶은데 쉴 수 있는 편안함이 제공되질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차라리 블로그에 깨끗하다고 쓰여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쉴걸 그랬나? 아니야 어차피 여기로 들어와서 살 텐데 빨리 적응하는 게 낫지.. 살아야 하는데.. 2박 숙박요금으로 150불인가를 받았던 것 같은데 이 날강도들.. 지금 당장은 돈이고 뭐고 다 던져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지져스.. 신이시어 저에게 이 시련을 극복할 힘을 주세요..
아니지 신에게는 이렇게 말해야지.
이렇게 한 몸 뉘일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총소리가 아닌 북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지니 감사합니다.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경험하니 좋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덜 예민하고 까다롭게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킬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한 달 뒤 나는 어떨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데 이 환경에도 잘 적응해 있을까? 도무지 이 시큼한 땀냄새는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집에서 챙겨 온 베개 커버를 뚫고 냄새가 올라오기에 베개를 멀찍이 치우고 비행기에서 사용했던 목베개를 깔고 누웠는데도 어디선가 시크름한 냄새가 불쾌하게 풍겨온다.
그리고 누가 4월의 인도가 덥다고 했는가. 침대에 누웠다가 추워서 한 겹 한 겹 껴입다 보니 상의는 세 겹, 하의는 두 겹을 입고 양말까지 신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나 원 참..
짧은 여정이면 그럭저럭 참아볼 텐데 한 달이나 여기서 묵어야 한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암담한 심정이다. 저 미친 북소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30분째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북소리. 한국이었으면 벌써 경찰 출동했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은 뉴델리 공항 인근 호텔에서 잤는데, 그때는 위생도 위생이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를 견딜 수가 없어서 고생이었다... 여기는 후각과 청각이 함께 고통스럽다.
^-^
이렇게 불평불만을 쏟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잠에 들었다. 역시.. 잠이 안 올 때는 글을 읽거나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더럽고 냄새난다며 불평했던 이불을 덮고, 쿨쿨 잤다. 적응을 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이미 하룻밤 사이 이 공간이 익숙해졌다. 심지어는 아늑하다고도 느끼는 중.. 아침이 되어 새로운 자아가 나타난건가..?
하지만 오늘은 침낭 쇼핑을 나가봐야겠다. 피곤해진 밤이면 예민한 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