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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May 09. 2023

혼돈의 카오스 인도, 안녕

무질서 속의 질서, 혼란 속의 평화

리시케시를 떠나올 때는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비가 내렸다. 택시를 타고 매일같이 오가던 길을 눈으로 훑으며 지나가니 기분이 묘했다. 줄리아와 해부학을 복습했던 부디카페, 다경언니랑 예진이랑 갔던 이라스키친, 드롭인 수업을 들으러 다녔던 건물, 수업이 끝나면 방앗간처럼 들렀던 슈퍼, 근육통을 호소하며 딥티슈 마사지를 받았던 아유르베다 마사지샵.. 고작 한 달이었는데도 추억이 참 많이도 생겼구나 하며 기억들을 훑었다.

부디카페와 이라스키친
드롭인클래스 길목과 마사지숍

분명 한 달 전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소를 마주치면 화들짝 놀랐는데, 어느새 그들과 융화되어 눈길도 오래 주지 않은 채 나란히 걸었다. 처음에는 공사장에서 불어오는 먼지와 자동차, 오토바이 매연, 길거리 오물에서 풍기는 악취를 막으려 마스크를 끼고 다녔었는데, 어느새 길에서 풍기는 소똥 냄새를 정겨워하고 있었다.

나는 참 거슬리는 게 많은 아이였다. 무던한 성격이면 좋겠다고 기도 할 정도로 예민한 아이였다. 어려서 엄마가 예쁜 타이즈를 입히면 불편하다고 소리 지르며 벗어던지고, 노트 필기 글씨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장을 찢어내고 다시 써야 직성이 풀리는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내가 인도에 간다니 부모님이 놀랄 수밖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적응력이 좋다는 걸. 어디에 던져놔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옳았다.


인도는 참 혼란스러운 나라다. 전 세계 각지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 오는 나라지만, 도심 어느 곳에도 평화가 없다. 아쉬람에서 하루 온종일 요가와 명상을 수련하며 마음속에 평화를 찾았대도 시내 한번 나가면 말짱 꽝이다.


도로는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가 환장의 하모니를 이룬다. 인도에도 현대 자동차가 많은데,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내수용이랑 다르게 클락션이 잘 눌리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클락션 소리도 다채롭다.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들을 뚫고 멜로디가 있는 클락션이 울리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입이 떡 벌어지는 데시벨과 요란법석함이다.


혼란을 만드는 건 소음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대형 버스가 지나가면서 모래바람을 만들고, 세 집 건너 하나씩 있는 공사장에서는 시멘트 가루가 폴폴 날린다. 그뿐인가? 정수리가 벗겨질 것처럼 따가운 햇볕에, 온 길바닥을 수놓은 향긋한 소똥, 말똥, 개똥, 고양이똥, 손을 아무리 휘저어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날파리떼까지.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빵빵대며 거칠게 달리는 차들 사이로 소가 유유히 걸어가고, 갓길에 서있는 소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되새김질을 하고, 신발가게 앞에 깔린 신발 더미 위에서 커다란 개가 똬리를 틀고 낮잠을 자고, 건물 난간에서는 원숭이들이 서로의 이를 잡아주고있다. 그야말로 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참 재미있는 나라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인도는 참 묘한 매력이 있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다르게 사는 나의 삶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는데, 인도에서 지내는 한 달간 그런 종류의 불안감은 느끼지 못했다. 워낙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다 보니 내 상황이 평범하게 느껴진 걸까? 너무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다 보니 나의 다름이 드디어 수용된 걸까?


한 달 동안 나는 하루하루에 충실했다. 5시 반이 되면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마치면 아침식사를 했고, 또 수업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수업을 했고, 저녁을 먹고 나면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하루동안 배운 내용을 복습하거나 쉬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나를 발전시키고,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것에만 집중한 시간이었다. 나의 치유, 나의 행복, 자아실현을 위한 시간들이었다.


이제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사이에 그리웠던 일상에 조금씩 불평과 불만이 떠오르고, 여독이 풀리고 나니 인도살이가 그리워진다. 일상에 충실하게 지내다가 다시 훌쩍 다녀와야지. 마음에 사랑이 모자라고, 지루함이 가득할 때 다채롭고 신비한 인도에 다시 다녀와야지.

인도와는 사뭇 다른 동해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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