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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Dec 08. 2023

생각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어쩐지 되게 피곤하더라니

요즘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생각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이 한 문장에 생각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있는데, 내 머릿속을 대변하는 듯 한 문장이다. 그만큼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 가득 찬 것 이상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생각 멈추는 걸 어떻게 했더라? 그래. 요가를 하면서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면 생각이 잠시 멈춘다. 동작 중간중간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까지는 막을 수 없지만, 생각이 끼어드는 순간 자세가 무너지기 때문에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동안 몸에 집중하고 나면 정신이 개운해진다.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을 좇을 때, 아니면 강아지가 싼 똥을 똥봉투에 주워 담을 때 생각이 잠시 멈춘다. 무언가에 몰입한 순간, 집중한 순간 생각이 멈추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일상에서 늘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그 또한 절망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훈련이 필요한 건가? 문득 입시미술을 할 때가 떠오른다. 정물화를 그릴 때, 특정한 물체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것도 생각을 멈추게 했다. 시각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가? 원래 다들 그런 건지, 내가 유난히 집중력이 약하고, 생각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건지 모르겠다. 둘 다 일 확률이 높겠다. 생각이 많을 때,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서 유튜브나 영상, 콘텐츠를 본다. 잠시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생각이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고, 잠시 뒷방으로 밀려난다. 밀려난 자리에는 새로운 자극과 정보가 만들어내는 생각들이 생성된다. 더 다채로운,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생각까지 가져오게 되니 궁극적으로는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리저리 주워 들어 아는 게 많으니 근심, 걱정, 오지랖만 늘어난다.


지금 이렇게 글을 싸지르는 것처럼, 어디에라도 토로하지 않으면 생각은 끊임없이 자가증식한다. 많은 이들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하는데, 나의 생각은 꼭 꼬리를 물지도 않는다. 내 의식의 흐름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물론 미묘한 개연성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개연성이 아니라서 나 스스로도 앞뒤 생각의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다. ADHD가 있는 게 아닐까?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을 읽고 나서 부쩍, 나도 ADHD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내면에서도 ADHD의 면모가 드러난다. 생각조차 널뛰기를 한다. 핑퐁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은 그래도 어떠한 결론에 다다르지 않을까? 내 머릿속을 널뛰기하는 생각은, 그 어떠한 생각에도 매듭을 짓지 못한다.


강아지 산책을 하던 중, 문득 마음 한 구석에 친구에 대한 서운함이 튀어 오른다. 걔는 도대체 뭐야? 왜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야? 어이없어. 근데 사실 내가 먼저 배려가 없었나? 아 송이 똥 싼다. 산이는 왜 풀을 뜯어먹는 거야? 갑자기 고양이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신전 로제떡볶이 먹고 싶다. 이렇게 하루를 흘려보내도 되는 건가? 계획 없이 목표 없이 살아도 되나? 인생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맨날 같은 장면을 보고 오매불망 산책하거나 밥 먹는 시간만 기다리는 강아지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 걸까? 너무 슬퍼,, 너무 을씨년스러워,, 그래도 공기가 좋네,, 저녁 뭐 먹지,, 꽁치 김치찌개 끓여 먹어야지,, 커튼 주문해야 하는데,, 하기 싫다,, 하루종일 하는 것도 없는데 왜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 성수기에는 그렇게 많은 일들을 쉴 틈 없이 해놓고,, 성수기에 100가지 일을 했다면 지금은 두세 가지 일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것도 하기 싫어서 이렇게 미루고 또 미루고,, 엄마는 뭐 하고 있을까? 청국장 잘 먹었나? 열정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성수기 때 다 쓴 것 같은데, 그럼 이제 쉬어도 되는데 나는 왜 못 쉬고 있을까? 백수가 제일 바쁘다고, 사실 쉬는 것도 부지런해야 하는 건가 봐,, 늘어지게 자고, 먹고, 뒹구는데 왜 몸은 더 안 좋아지지,,


글로 나열하고 보니 정말 아득하다. 산책하는 30분간 떠올린 기억의 조각들을 나열했을 뿐인데 질린다. 나 도대체 무슨 삶을 살고 있는 거지? 그래 지칠만하다.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피곤하고,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나 의아했는데, 이제야 수긍이 간다. 인정한다 나의 피로. 뭘 좀 해줘야겠다. 쉴 수 있게. 우선 이 글을 통해서 유튜브를 보는 게 이너피스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으니 디지털 디톡스를 좀 해야겠다. 유튜브가 보고 싶을 땐 글을 쓰자. 어떤 감정,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가 유튜브를 보고 싶다고 느꼈는지 기록해 보자. 무의식적으로 유튜브를 봤다면, 그걸 알아차린 순간 기록해 보자. 누가 아는가? 내가 싸지르는 글이 누군가에게 귀한 연구 자료가 될는지..


머리를 가득 채운 생각들을 싸지르자. 나의 해우소를 만들어 부지런히 싸보자. 푸드득 뿌직뿌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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