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연애부터 하고 결혼할게요

충성!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임무는 농부

by 산골노마드

03년도 1월 추위가 매섭던 어느 날 전방부대로 발령받아 신고식을 마쳤다.

아직은 전방부대에 여군은 생소했던 터라 하루 종일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칼바람과 눈보라에 겹겹이 옷을 입어도 군복은 그렇게 추웠다. 그날 그 추웠던 신고식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충성! 신고합니다. 하사 박은진은 2003년 1월 00일부로 오뚝이사단으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봄바람이 불던 4월에는 훈련이 많았고, 더위가 가득 찬 8월에는 야간 행군도 했다. 그렇게 군 생활이 익어 갔다. 점점 야전부대 군인으로 진화해 가던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온 한 남자, 그 남자가 내 사람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매번 나만 보면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던 그 선임의 얼굴은 같이 산지 20년이 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선임은 드라마에 나오는 유시진대위(송중기)처럼 아니, 내 눈엔 유시진대위보다 훨씬 더 잘나 보였다. 그렇게 짝사랑이 시작되었고 매일같이 그 남자에게 대시를 했다. 무슨 용기였을까? 아마 동반자가 될 운명을 알아봤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 눈엔 너밖에 안보였다고.....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여군으로 생활하던 그때는 부사관들이 차를 구매하고, 운행하는 것은 부대 지휘관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쉽지 않았던 일이다. 나는 특혜는 아니었지만 다른 선배 부사관들보다 그저 여군이어서 일찍 차량을 가질 수 있었고 선배들의 무서운 눈초리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차로 출퇴근을 했다.


함께 출퇴근을 했던 멤버(5인승 승용차)중 한 명인 지금의 짝꿍은 나를 수행비서 또는 운전사로 생각했던 것 같다. 늦은 밤 문자로 (그땐 카톡이 없었음) 심부름을 시켜도 후배라서가 아니라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불만 없이 심부름을 했고 (배민처럼) 그걸 잘 아는 그 남자는 자꾸 심부름을 문자로 보내곤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고, 우린 연인인 듯 직장 선 후배인 듯 애매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연애를 했다. 이렇게 미운 정, 미운 정 또 미운 정 그리고 고운 정을 나눈 1년 연애 끝에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 또 생각해 봐도 그렇다 할 프러포즈도 없이 소소하게 각자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들 챙기고 없는 물건만 구매해서 신혼집을 채웠고, 결혼식 준비도 군인할인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었고, 본식 때 있을 화려한 이벤트(그때 당시)도 무료로 선물 받았다.


그렇게 2006년 6월 우리는 아주 씩씩한 결혼식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