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다음 해 여름이었다. 집이 가까워 함께 다니게 된 같은 반 친구 C와 함께 '매일 분식'에 들르게 되었다.
그날따라 내가 너무 떡볶이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C를 사주기로 하고 함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매일 분식'의 떡볶이는 사춘기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줄 만큼 맛있었고 함께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C와 몇 번을 더 '매일 분식'에서 떡볶이를 먹었고 그때마다 계산은 내가 했다. 용돈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입이 짧았던 내가 떡볶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엄마는 친구랑 사 먹으라며 조금씩 돈을 더 주셨다. 그렇게 몇 번 나와 함께 떡볶이를 먹던 C는 다음엔 자신이 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엄마는 내가 방과 후 군것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녁밥을 적게 먹으니 안 되겠다고 하시며 학교를 마치면 배가 고파도 곧장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마련해 둔 과자나 빵을 먹도록 하셨다.
내가 그 이야기를 C에게 전하고 아쉬워하니 C는 그래도 자신이 한 번은 분식을 사주고 싶다며 내일 함께 '매일 분식'에 가자는 것이다. 나는 그러자고 하고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허락을 해주셨고 다음 날 나는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매일 분식'의 떡볶이를 먹을 수 있겠구나 싶어 신이 났다. C가 사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용돈을 받은 나는 책가방 안쪽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돈을 넣어두었다. 이번에 우리 마지막인데 배 터지게 먹어보자고 할 참이었다.
점심시간 다음은 체육시간이었다. 체육시간에는 분실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대개의 아이들이 돈을 주로 체육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가방 안쪽 주머니 지퍼를 열어 어제 넣어 둔 돈을 체육복 주머니 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였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모른 체하기로 했다.
C의 집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C의 엄마는 혼자 식당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언니와 오빠는 이미 다 성장해 타 도시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C의 집 형편이 어려웠던 것은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때문임을 다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C는, 인물은 없었지만 밝고 명랑한 성격에 유머가 있었고 교실 청소도 슥슥,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척척, 어떤 일을 시켜도 씩씩하게 해내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랬던 친구가, 하굣길에 함께 걷고 함께 먹으며 추억을 쌓아가던 친구가 내 가방에서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이 그때는 너무 무서웠다.
그날 오후에 나는 C와 함께 '매일 분식'에 갔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계산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내 돈이니 내가 한 것일 수도, 그 애가 가져갔으니 그 애가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그날의 떡볶이.
그날 이후 나는 C에게 다른 일을 핑계 대고 함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우리 둘은 멀어져 갔다.
C도 자신의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때로는 나의 호의나 선의가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라지도 않던 호의를 받고 뜻밖에도 상대가 호의에 대한 답례를 원할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C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면서 나만 돈을 내고 있으니, 내가 괜찮다고 아무리 말했어도 C의 마음은 괜찮지가 않았었나 보다. 어쩌면 '얻어먹는' 입장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사준다니 먹긴 했지만 속으로는 빚진 마음이 들어 불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라도 얻어먹고 함께 다니는 그때의 우리 우정을 깨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그때 '사춘기'였으니까.
내일은 내가 시장 떡집에 가서 가래떡을 사 와야겠다.
고추장에 케첩을 살짝 넣고 파와 양배추를 잔뜩 얹어 만드는 나의 '겨울꽃표 떡볶이'로 남편과 화해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그는 사다 주지 않았으나 네 캔에 만이천 원 하는 편의점표 맥주도 사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