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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Nov 19. 2024

흔한 음식이 주는 익숙한 위로: 떡튀순

8.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늦은 밤 혼자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시켜 먹었다.

잠깐의 말다툼으로 담배를 사러 나가는 남편에게 주를 사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야밤에 혼자 분식을 먹으며 언제부터인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우리 부부의 어긋남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 시킨 이 집의 분식 맛은 예전에 아들과 자주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특히나 찰순대의 쌈장이 흔히 아는 맛이 아니었다. 사장님이 창의적으로 만든 것인가 본데 내 입맛에는 '아니올시다'였다. 흔한 음식의 낯선 맛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의 혀는 이내 적응했고 허기졌던 뱃속도 채워졌다.

그러면서 남편으로 인한 억울함과 어처구니없음, 슬픔과 속상함도 차차 풀려갔다.


오늘 밤의 분식처럼 남편은 내게 익숙하면서도 가끔은 낯선 사람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만 해도 삼십 년이 넘었고 알아온 시간은 삼십오 년이 넘었지만 오래된 나의 그 사람은 긴 시간, 내 곁에 있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던가 보다.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이 어디 그 사람뿐이랴.....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가 알던 예전의 내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왜.....

'사랑'은 그렇게 변하는가.

사랑도 사람의 일이면 쉽게 바뀌지도 고쳐쓸 수도 없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에 잠기면서 떡볶이 위에 얹힌 치즈를 먹었다.

포크로 건져 올려진 치즈는 주욱 늘어나서 내 입 속으로 들어와 부드러운 쫄깃함과 고소함을 남기고 사라진다.

언제부터 떡볶이 위에 치즈는 얹힌 것일까. 그러고 보니 찰순대의 쌈장 맛만 변한 것이 아니라 떡볶이도 종류가 다양해졌다. 더 나아진 맛도 있고 덜 해진 맛도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허기지고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익숙한 맛!



몹시도 춥던 겨울 어느 날, 중학생이던 나는 난방이 미흡한 교실에서 종일 오들오들 떨다가 친한 친구 셋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문을 나서면 길가로 서점들이 늘어서 있고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면 상업학교 언니들이 많이 가는 '매일 분식'이 있었다. 우리는 어묵탕 냄새와 떡볶이에서 올라오는 김을 보며 가지고 있던 돈을 모아 '매일 분식'에서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집까지 한 15분 걸으면 되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가야 했는데 모두들 이렇게 가다가는 동상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도시락에 든 밥을 먹은 지도 서너 시간이 지났고 돌도 소화시킨다는 나이의 우리들은 쓰고 있던 안경에 김이 서리는 분식집 안에서 마냥 웃으며 즐거웠다. '매일 분식'의 떡볶이는 어쩌면 그리도 맛있었는지.....

집집마다 아이들 용돈이라 해봐야 거기서 거기였던 시절, 배부르게 먹을 수는 없었지만 주인아주머니가 얼마든지 주셨던 어묵 국물은 꽁꽁 얼어있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었다.


다음 해 여름이었다. 집이 가까워 함께 다니게 된 같은 반 친구 C와 함께 '매일 분식'에 들르게 되었다.

그날따라 내가 너무 떡볶이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C를 사주기로 하고 함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매일 분식'의 떡볶이는 사춘기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줄 만큼 맛있었고 함께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C와 몇 번을 더 '매일 분식'에서 떡볶이를 먹었고 그때마다 계산은 내가 했다. 용돈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입이 짧았던 내가 떡볶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엄마는 친구랑 사 먹으라며 조금씩 돈을 더 주셨다. 그렇게 몇 번 나와 함께 떡볶이를 먹던 C는 다음엔 자신이 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엄마는 내가 방과 후 군것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녁밥을 적게 먹으니 안 되겠다고 하시며 학교를 마치면 배가 고파도 곧장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마련해 둔 과자나 빵을 먹도록 하셨다.

내가 그 이야기를 C에게 전하고 아쉬워하니 C는 그래도 자신이 한 번은 분식을 사주고 싶다며 내일 함께 '매일 분식'에 가자는 것이다. 나는 그러자고 하고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허락을 해주셨고 다음 날 나는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매일 분식'의 떡볶이를 먹을 수 있겠구나 싶어 신이 났다. C가 사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용돈을 받은 나는 책가방 안쪽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돈을 넣어두었다. 이번에 우리 마지막인데 배 터지게 먹어보자고 할 참이었다. 

점심시간 다음은 체육시간이었다. 체육시간에는 분실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대개의 아이들이 돈을 주로 체육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가방 안쪽 주머니 지퍼를 열어 어제 넣어 둔 돈을 체육복 주머니 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였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분명 점심 먹을 때도 내가 확인을 했다. 그때까지도 있었던 돈이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사라졌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C가 내 가방이 어디 있느냐고 묻더니 뒤지더라는 말을 짝꿍이 내게 살며시 했다.

설마 다른 친구가 다 보는데 돈을 훔쳤을까......

나는 짝꿍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옆 분단에 앉아 있던 부반장이 내게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C가 내 가방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가더라는 말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모른 체하기로 했다. 


C의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C의 엄마는 혼자 식당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언니와 오빠는 이미 다 성장해 타 도시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C의 집 형편이 어려웠던 것은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때문임을 다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C는, 인물은 없었지만 밝고 명랑한 성격에 유머가 있었고 교실 청소도 슥슥,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척척, 어떤 일을 시켜도 씩씩하게 해내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랬던 친구가, 하굣길에 함께 걷고 함께 먹으며 추억을 쌓아가던 친구가 내 가방에서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이 그때는 너무 무서웠다. 

그날 오후에 나는 C와 함께 '매일 분식'에 갔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계산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내 돈이니 내가 한 것일 수도, 그 애가 가져갔으니 그 애가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그날의 떡볶이.

그날 이후 나는 C에게 다른 일을 핑계 대고 함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우리 둘은 멀어져 갔다.

C도 자신의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때로는 나의 호의나 선의가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라지도 않던 호의를 받고 뜻밖에도 상대가 호의에 대한 답례를 원할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C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면서 나만 돈을 내고 있으니, 내가 괜찮다고 아무리 말했어도 C의 마음은 괜찮지가 않았었나 보다. 어쩌면 '얻어먹는' 입장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사준다니 먹긴 했지만 속으로는 빚진 마음이 들어 불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라도 얻어먹고 함께 다니는 그때의 우리 우정을 깨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그때 '사춘기'였으니까.




내일은 내가 시장 떡집에 가서 가래떡을 사 와야겠다.

고추장에 케첩을 살짝 넣고 파와 양배추를 잔뜩 얹어 만드는 나의 '겨울꽃표 떡볶이'로 남편과 화해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그는 사다 주지 않았으나 캔에 만이천 원 하는 편의점표 맥주도 사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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