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곶감 하나 사 줄 수도 있는 것을, 철없는 손녀딸이 모르고 먹은 걸 갖고 엄마한테 일러바쳐서 꼭 그렇게 매를 맞게 해야 되나! 생각하면 할수록 외할매가 밉고 엄마도 밉고 화가 나!"
나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은 십대 후반의 어느 날부터 외할머니께서 집에 오시는 날이면 인사도 하지 않고 제 방에 앉아 까칠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엄마와 내가 외할머니한테 대체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면 짜증만 낼 뿐 외할머니에 대한 태도는 꽤 오랫동안 변함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둘째가 사춘기라 그런갑다, 하시면서 민망해하는 엄마를 향해 동생이 하는 대로 가만 놔두라고 하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휴일에 나와 동생이 외화시리즈를 보면서 곶감을 먹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동생이 어린 시절, 시장에서 곶감 집어먹다가 엄마한테 매맞은 일을 떠올렸던 것이다.
"외할매랑 언니하고 시장갔을 때, 내가 곶감을 하나 집어 먹었거든. 조그만 애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눈에 보이니까 한 개 집어 먹었는데 외할매가 그것 땜에 가게 아줌마랑 싸우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일러바쳤어. 화가 난 엄마는 대여섯 살 밖에 안 된 나를 회초리로 매를 때렸어. 그 어린 애가 뭐를 안다고! 그 곶감 하나 사 줄 수도 있는 것을, 철없는 손녀딸이 모르고 먹은 걸 갖고 엄마한테 일러바쳐서 꼭 그렇게 매를 맞게 해야 되나! 생각하면 할수록 외할매가 밉고 엄마도 밉고 화가 나!"
"아하!"
나는 그제서야 동생이 왜 그렇게 외할머니에게 쌀쌀맞았는지 짐작이 갔다.
우리 엄마는 아들을 얻고자했지만 딸만 넷을 낳으셨다.
우리 넷은 터울도 작아서, 나와 둘째가 두 살 터울이었고 그 밑으로 둘째와 셋째가 또 두 살 터울이었다. 마지막으로 셋째와 막내는 연년생이었으니 엄마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할 것이다.
자연히 시골에 홀로 계시던 외할머니께서 우리를 돌보기 위해 자주 오셨다.
외할머니는 특히나 내게 엄마와 다를 바 없는 분이셨으니, 엄마가 어린 셋째와 갓난쟁이 막내를 키웠던 몇 년간은 둘째와 함께 외할머니의 손에서 길러졌다.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면 밑의 어린 두 동생은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 대신 외할머니는 나와 둘째의 손을 잡고 놀이터도 데려가고 시장도 데려가면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한껏 만들어 주셨다. 엄마를 대신해서 엄마보다 더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주셨던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산후통으로 자주 아팠던 엄마 대신 밥상을 보아 주셨고 함께 놀아주셨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심심하지 않게 해주셨다. 엄마의 사랑이 늘 그립던 나와 어린 동생들에게 외할머니는 한번도 큰 소리로 나무라신 적이 없었으며, 농사일과 집안 일로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손이지만 우리들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시고 아껴주셨다. 따갑고 따스했던 외할머니의 손길과 온화한 웃음. 나는 정말이지 외할머니를 엄마라고 착각하며 자랐던 거 같다.
어린 시절의 그러한 추억이 함께 있었기에 외할머니에 대한 마음은 나와 둘째가 별 다를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그 아이의 마음 속에 이런 응어리가 져 있었다니 나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생이 기억하는 그 일은 사실 나도 기억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 일로 인해 정작 억울할 사람은 동생이 아니라언니인 나였지만 어렸던 동생은 앞 뒤 정황은 다 빼버린 채 그 일을 자신이 매 맞은 것에만 결부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과일가게에서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사려고 주인 아줌마와 흥정을 하고 있을 때, 어린 동생은 집에서 자주 먹던 곶감이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매대의 높이가 딱 그 아이의 눈높이였다.
우린 둘 다 곶감을 좋아했기에 눈 앞에 있는 곶감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언니야, 곶감이다!" 하고 그냥 손으로 집으려는 동생에게 나는 그냥 먹으면 안 된다고 일러 두고 흥정을 하고 있던 외할머니를 부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때였다. 동생이 곶감을 집어 든 것은. 그리고 집어든 곶감은 그대로 동생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 일로 인해 외할머니는 가게 주인 아줌마와 실랑이를 하셨고 외할머니는 내게 왜 동생을 잘 보지 않았나고 야단을 치셨다. 집에 돌아와서 외할머니는 자초지종을 엄마에게 말씀하셨고 화가 난 엄마는 매를 들고 오셨다. 동생은 매를 맞은 것이 자기 뿐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 날 매를 맞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동생을 안 살피고 뭐했냐는 것이었다. 그나마 곶감이라도 먹고 매를 맞은 동생은 차라리 나았다.
나는 곶감은 커녕 동생 덕분에 얻어 맞기만 했으니 속이 상해도 내가 저보다 몇 배는 더 상해야 했고 외할머니와 엄마, 두 분이 미워도 내가 저보다 두 배는 더 미워야 했다.
그런데도 기억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동생은 자기가 기억하는 부분만 기억하고 나머지 사실들은 모두 배경으로 물려 버렸다. 아마도 어렸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나마 내가 두 살이 더 많았기에 외할머니와 엄마의 사정을 그 때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의 행동에 화가 나고 매를 때린 엄마에 대해서도 화가 났지만, 외할머니까지 미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던 것일게다.
내가 동생에게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합치하는 부분이 있고 너의 기억에 없는 부분이 나에게 있다고 말했을 때 그 애는 흥분했다. 자기의 행동때문에 언니까지 매를 맞았다니 더 짜증이 났던 것인가 보았다.
명절 연휴 끝에 외할머니가 차례 음식과 과일을 들고 우리 집으로 오셨을 때, 평소라면 외할머니를 봐도 말도 하지 않고 제 방으로 가버렸을 그 애가 외할머니에게 '곶감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소리를 쳤다.
"할매는 그때 그 어린 게 뭐를 안다고 곶감 하나 집어 먹었다고 엄마한테 일러바쳐서 꼭 그렇게 매맞게 해야 됐었나요? 내 같으면 하나 사줘도 사주겠다, 할매. 손녀딸이 모르고 먹은 걸 갖고 엄마한테 일러바쳐서 꼭 그렇게 매를 맞게 해야 되나요!"
동생에게 지나간 이야기를 뭐하러 하냐며 말리는데 내게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놔둬라. 저 할 얘기 다 할 수 있게 놔둬."
씩씩거리던 동생에게 외할머니는
"전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구나." 하시는 것이다.
나와 동생은 갑자기 무슨 말씀이지 했다.
"낼 모레가 추석이라 니들 둘이 데리고 차례상 올릴 물건 산다고 시장에 안 갔나.....과일상에 가서 사과를 사는데 둘째가 곶감을 빼먹은 거라. 꼬치에 열개씩 꽂아서 추석 선물세트로 한 상자를 만들어 놓은 건데, 둘째가 거기서 한 개를 빼서 먹은 거라. 내가 열개 짜리 꼬치 하나를 사겠노라고 하니 장사치 인심이 어디 그러나, 그 대목에. 한 꼬치가 없으면 자기들이 팔 수가 없다면서 나더러 한 상자를 다 사가라고 하더라. 내가 그때 어디돈이 있었나. 하는 수 없이 집으로 갖다 달라고 하고 니들 엄마한테 얘길해서 값을 치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곶감 한 상자가 요새도 비싸지만 그 때도 비쌌거든. 니들 엄마가 내한테다 화를 낼 수가 있었겠나, 가게 주인한테 화를 낼 수 있었겠나. 속이 상해놓으니 니들한테 그러면 안 되지만 매를 댔다... 다 내가 돈이 없던 탓이다."
그 이후로 동생은 외할머니에게 더이상 까칠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한참 후에 내가 장난스럽게 곶감 이야기를 꺼냈을 때, 둘째는 쌍꺼풀 진 큰 눈을 껌뻑거릴 뿐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