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금진 3

1990년, 속초, 고모와 창수 아저씨

by 소설 쓰는 라떼

고모는 홀로 사는 주택의 작은 방을 내주었고 나는 속초에서 다시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게 됐다. 나는 주문진에 다시 돌아갈 학교가 있으니 엄마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만 지내고 싶다고 졸랐지만 고모에게 혼쭐이 났다. 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이를 식당에서 종일 데리고 있다가는 고모가 경찰서에 붙들려 가게 생겼다고,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이놈의 센 팔자, 이 나이에 웬 아까지 맡아 거두게 생겨싸!

고모는 나를 가리켜 묻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꾸했다.

-혼자 사는데 내가 있으면 더 적적하지도 않고 좋지 뭘 그래요!

부러 다부진 척하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이 맞는 말이라고 손뼉 치고 자지러지면 고모의 얼굴은 그제야 조금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고모는 우중충한 날씨의 밤이면 가게 문을 닫고도 새벽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내주던 상에 골뱅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놈의 팔자라는 단어를 넣어 타령을 했다. 11시가 되어도 고모가 집에 오지 않으면 나는 가게로 가서 고모를 데리고 가야 했다.

-금진아! 아마도 니 엄마가 얼굴이 희! 디 희고, 참말로 예뻤지? 시골 출신답지 않게 낯빛이며 이름이며!

-야이, 불쌍한 아야!

고모는 흐느적 걸어가면서도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나는 고모가 그럴 때마다 말리지 않고 등을 만져 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얼음장 같은 고모를 녹일 만큼 불쌍한 아이는 나일까, 엄마일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면 고모는 순식간에 코를 골아댔다. 고모의 입에서 푸우, 푸우 하는 바람 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매운 내를 풍기는 고모가 조금 싫어지기도 했다. 고모의 크고 늘어진 젖가슴은 엄마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도 고모의 투박한 손을 몇 번 쓰다듬는 날엔 다 알지 못하는 고모의 지난날이 드라마처럼 스쳤다.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상자 안에 든 몇 장의 바랜 사진과 연애편지로 보이는 찢어진 종이를 퍼즐 맞추듯 맞추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모 옆에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떤 날은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아빠가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산호가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엄마와 내가 살던 한 칸짜리 셋방을 들어가면 좁은 부엌에서 화장실로 나가는 쪽문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항상 쪽문으로 향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쪽문 옆 수도를 틀어놓고 손빨래를 하던 엄마를 보고 나의 마음이 어찌나 설레고 행복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쪽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엄마를 외치며 쪽문을 열어젖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아닌 새끼고양이와 눈이 마주쳐야 했다. 엄마가 외출했다 돌아올 즈음이면 쪽문으로 나가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엄마가 나가면 늘 그 자리에서 엄마가 걸어가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엄마가 나를 떠나던 그날 밤도 나는 쪽문을 열고 낮은 담 안에서 엄마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는 빚쟁이들에게 맞아 온몸에 피멍이 들고 다리를 절었다.

-엄마아! 엄마아!! 엄마아!!!

-엄마아!!! 나중에 나 꼭 찾아와야 된다!!!

깊은 어둠이 엄마의 멀어져 가는 모습을 완전하게 덮어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이부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제 다시는, 영영, 이라는 생각보다는 왜, 어째서라는 질문과 그토록 함께하고 싶었던 존재에 대한 상실감에 눈을 감았다.


산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산호의 얼굴마저 희미했다. 아스라이 형상이 보였지만 전부 그려낼 수 없었다. 뽀얀 얼굴과 가느다란 손가락 정도만이 가끔 그려지곤 했다. 전화를 걸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산호와 나는, 아니 나는 산호에게 뭐든지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했었는데 지금의 상황을 산호에게 알리는 일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홉 살이 되었다. 속초해물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고모가 말하는 센 팔자의 연속이었다. 고모가 잠시 은행에 간 사이 웬 까까머리의 허름한 차림을 한 남자가 가게로 들어와 앉았다. 마치 오랜만에 가게에 온 손님처럼 가게를 휘-둘러보았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부러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물병과 컵을 건네며 사장님은 곧 오실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일렀다.

-니 누구나?

남자가 나의 팔을 잡아챘다.

나는 눈을 치켜올린 남자의 매서움에 소스라쳤다. 깡마른 남자의 얼굴에 박힌 두 눈에는 감정이라곤 없어 보였다. 마치 배고픈 진돗개 같았다. 그때 식당 문이 열렸다. 사나운 남자와 마주한 고모의 얼굴은 얼음바위처럼 굳었다.

-누나아

먼저 정적을 깬 쪽은 남자였다. 나는 처음에 그 말소리가 ‘엄마’라고 하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내게 누구냐고 물을 때와는 달리 남자의 험상궂은 얼굴에서 어린애 같은 칭얼거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고....... 창수야.......

고모가 결혼했었고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건 아니지만 직접 고모의 입에서 들은 적은 없었다. 고모의 방을 정리하다가 나온 빛바랜 아이의 돌 사진이라든가 고모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서기 전까지 고모를 향해 구애하던 시절의 연애편지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모는 주방으로 가서 두부 한 모를 씻어서는 남자의 입으로 가져갔다.

-고생 많았다.

남자는 다시 누나아- 부르고는 꺼억꺼억 울어댔다.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울음소리였다. 고모는 서른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를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고모의 가슴팍에서 한참을 울던 남자는 코가 막혀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머리를 드러냈다. 그러고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누나, 자는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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