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금진 4

1990년, 속초, '창수'라는 남자

by 소설 쓰는 라떼

창수라는 남자가 나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일은 끔찍한 상상이었다. 언젠가 산호네 집에 놀라갔을 때 산호는 개구진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어요?

뜨개질을 하던 산호의 엄마는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고상하게 대답했다.

-응, 그건 말이지, 아빠에게 여러 개의 아기씨가 있어. 그 중에 산호라는 아기씨가 가장 먼저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집으로 달려온 거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저 험상궂은 인상의 저 남자가 내 아버지가 맞다면? 왜 저 남자는 나라는 씨앗을 몸 안에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니, 나는 왜 하필 저 사납고 초점 흐린 눈빛의 맹수 같은 얼굴을 한 남자의 몸 안에 들어있었던 걸까?

-내보내라 저 가시나, 내 새끼 아니라고! 증거도 없이 사람새끼를 들이나 누나는?

-증거는 뭔 개 같은 증거!, 니 새끼라고 들이미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이 새끼야! 눈 가느다랗게 찢어진 거 안 보이나? 니랑 똑닮았다!

-아이씨, 편지만 주고받아도 애가 생기나?

그러니까 창수아빠는 나를 낳은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지만 아기씨를 준 일은 없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기씨를 주고받으려면 만나기는 해야 할 텐데 좀 더 캐낼 얘기가 없을까.


-야, 니 나랑 눈이 닮았나, 코가 닮았나?

창수아빠는 걸핏하면 나를 불러놓고 자신과 내가 어디가 닮았는지 조목조목 비교하길 바랐다. 매일같이 혈액형을 물어왔지만 나는 모른다는 말로 응수했다. 창수아빠가 저리 심하게 나를 부인하니 이제는 엄마가 의심이 되었다. 엄마는 정말 창수아빠의 아이를 낳은 걸까? 그 아이가 나일까? 만약 이 모든 일이 거짓이라면 고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창수아빠의 딸인 척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는 무조건 고모의 조카가 되어야만 하니까.

-쌍거풀이 없잖아요.

-누가?

-우리요.

-하이고야, 후우리? 우리 자빠졌네, 이걸 확!

-윤상아는 알죠? 우리 엄마.......

창수 아빠는 내가 딸이 아니라고 밀어내면서도 엄마 이름을 대면 못들은 체하곤 했다.

-야야, 니 이름은 어디 그렇게 촌스럽게 금진이라 지었나?

창수아빠는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쉭쉭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금진을 몰라요?

-뭐라?

-내가 저기 정동진 지나서 금진항이라고 있는데 거서 태어나서 금진이라 지었다던데.

-에라이, 무식쟁이야. 속초에서 낳았으면 니 이름이 김속초나?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여간에 금진이고 주문진이고 나는 속초에서 나가본 일이 엄싸 이 간나야!

고모는 창수아빠의 뒤통수를 날래 갈기며 아홉 살짜리 아가를 그만 좀 괴롭히라고 충고했다. 아홉 살이나 먹은 것이 무슨 아기 대접을 받느냐며 내게 온갖 시기와 질투를 품은 창수아빠는 아홉 살 여자아이보다도 잘 토라졌다. 그런 창수 아빠의 모습은 처음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에서 되레 벗어나게 해주었다. 나는 창수아빠가 점점 아이 같이 느껴져 동생처럼 대할 때도 있었다. 물론, 창수 아빠는 모르게, 티도 안 나게 말이다.


창수아빠는 속초해물찜 영업을 담당했다. 위아래 모두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새하얀 새운동화를 신었다. 머리카락은 제법 자라 펌도 가능해졌다. 창수아빠는 고모를 졸라 각종 안주메뉴를 만들었다. 따로 광고를 내서 밤에 혼자 배달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재주문은 거의 없었다. 낮엔 서빙도 하고, 계산도 하고, 삥땅도 치고, 밖에 나가 호객 행위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따라 일기를 쓰기도 했다. 내가 보는 동화책도 함께 읽었다. 한번은 내가 산호에게 편지를 쓰자 옆에 붙어서는 내가 쓴 글자들을 어설프게 읽고 었다. 창수아빠는 낫 놓고 기역자는 알아도 초등학생인 나보다 책을 더 적게 읽은 티를 내고 다녔다. 나는 창수아빠에게 일기라도 매일매일 써보라고 조언했다.

-일기는 그날 기분을 쓰면 돼요. 계란말이가 돌돌 잘 말아질 때 뿌듯한 느낌, 감옥을 나오니 세상 밖이 참 좋아서 다시는 감옥에 가기 싫다는 느낌 그런 거요.

-그딴 거를 쓰면 뭐가 달라지나? 인생이 달라지나?

-해보면 알죠.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런 거 쓴다고 내 잃어버린 10년이 돌아오나?

창수아빠의 말이 틀린 건 또 아니어서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가끔 파리가 날리는 식당에서 혹은 식당 옥상에 있는 평상에서 나란히 그림책을 보았다. 처음 창수아빠가 나를 따라 옥상에 올라올 때는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저러나 싶기도 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는 고모의 말을 직접 시험해보니 정말 무슨 말을 들어도 내 귀에서 말들이 흘러나갔다. 그 모양새가 이제는 재미가 없었던지 창수아빠는 내가 읽고 던져놓은 그림책을 마지못해 펼쳐보기 시작했다.

-비형이래요.

창수아빠는 비형이었기 때문에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숭고한 행위래요.

-뭐라?

-글자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요. 잘 읽지는 못해도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려고 하는 건 아주 숭고하고 고결한 행위랬어요.

-누가?

-음, 산호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엄마가요. 되게 유식한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책을 많이 읽느다고 좋아해 주시다가 나중엔 싫어했지만요.

나는 불현 듯 산호의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산호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하지만 산호에게 쓴 편지들은 날마다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숭고는 뭐고 고결은 뭐나? 똑똑한 척 그만 떨어라.

-헤헤, 사실 나도 잘 몰라요 무슨 말인지는. 좋은 의미겠죠.

칭찬은 창수아빠를 자신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교도소? 거기서 요리하는 거 배웠어요? 지난번에 김치볶음밥 되게 맛있던데.

창수아빠가 나를 흘깃하더니 생트림을 했다.

-그 난쟁이들하고 노는 얼굴이 허연 그.......

-백설공주?

-공주? 그래 맞다, 공주.

-누가요?

나는 창수아빠가 드디어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구나 싶어 귀를 종긋했다. 엄마는 얼굴이 희고 머리가 새까맣고 그랬으니까.

-누가 공주 같았다고요? 누가?

-흠흠, 가끔 점심 때 해물라면 먹고 가는 아가씨 있잖아.

-치, 꿈도 꾸지 마요!

나는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와 책상에 엎드렸다. 나쁜 짓 하다가 교도소에 들어가 김치볶음밥이나 연습하다 나온 주제에 우체국 언니라니. 온몸에 열이 식지 않자 나는 다시 창문을 열어젖히고 소리를 질러댔다.

-언감생심!

-뭐어?

옥상에서 창수아빠가 대꾸했다.

-무식하면 용감하긴 하지!

순간 이렇게 말해놓고서도 창수아빠가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을까 부리나케 고모에게로 갔다. 김치볶음밥이 맛있어서 요리를 배워보라고 좋은 소리를 할 참이었는데 기분이 상해버렸다. 내가 세포도 되지 못하던 시절에 엄마와 창수아빠의 몸 속에서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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