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금진 6

1994년, 열네 살을 향해

by 소설 쓰는 라떼

나는 창수아빠가 싸울 때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와 살기를 보았다. 창수아빠는 자신이 보호받고 있는 장소와 사람에게 확실하게 충성했다. 그래서 자신의 안전지대로 누군가 침범해 온다면 상대가 겁을 주는 정도의 싸움을 걸어야지 싶다가도 바로 움찔하게 만들어 버렸다.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창수아빠에게 한 걸음 물러나거나 한 걸음 더 앞서거나, 어쨌든 그들의 계획을 틀어지게 했다. 창수아빠가 감옥에 갔던 일도 그랬을 터였다. 누군가 조금만 챙겨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면 바로 심복이 되는 놈. 고모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이인자도 못 되는 꼬봉 중의 꼬봉, 하빠리 중에 하빠리라고. 나는 그런 창수아빠의 다듬어지지 않고, 절제할 줄 모르는 감정의 폭발이 순수함의 이면이라고 느꼈고, 검은 드레스와 악당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넣은 고모가 할 말은 아니지,라고 속으로만 갸우뚱했다.


창수 아빠가 피해자가 되어 상대측과 억지로 화해하게 된 그날의 사건 이후, 고모의 걱정대로 나는 친구가 없어졌다. 몇 마디의 인사를 주고받을 친구가 없어진 경험은 제법 말발이 좋다는 평을 받던 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걸음걸이에 힘이 떨어졌다.

-저 가스나가 뭐라고 파티는 썅!

내가 외톨이가 된 것에 화라도 났던 것일까. 창수아빠는 내게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곤 했다.

-자, 이거 봐봐, 여기를 잡는 거야 여기를

창수아빠는 빈 콜라병 하나를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봐봐라, 이거를 말이다, 박을 깨트리듯이 니 대가리에다가 빡! 어? 막! 쳐야 대!

빡! 막! 하는 말소리를 낼 때마다 창수아빠의 눈에 흰자가 넓어졌다.

-가장 중요한 거는 빠르게, 씨게 치는 기다. 어? 애매~하게 대가리 맞았다가는 병이 깨지지도 않고, 아프기만 해

내가 멀뚱멀뚱, 무표정하게 바라보자 창수아빠는 마지막 키포인트라며 집중하라고 했다.

-자, 다시 간다, 씨게, 빠르게, 어? 그래야 병이 깨진다. 대갈빡은 하나도 안 아프다

-그래서요?

-뭐?

-그래서 내가 병을 왜 깨요?

-하! 이 염병! 병을 씨게 깨야 병이 동강이 나. 어? 그때 병 모가지를 딱 잡고 주변에 휘휘 몇 번 왔다리 갔다리 젓기만 해. 그럼, 아무도 안 다치고 다 이길 수 이싸. 좀 겁쟁이들은 이 정도면 다 수그러든다니!


창수아빠는 빈 병으로 아프지 않게 겁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서, 방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때쯤 창수아빠의 취미는 주택복권이었다. 당첨 번호를 연구한다던 창수아빠의 연구 방법은 당첨되지 않은 복권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혹은 혼자만의 어떤 의식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창수아빠는 언젠가 100만 원쯤이 한 번 당첨된 이후로 1등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숫자 6개가 다 맞으면 1등, 숫자 5개와 보너스 숫자가 맞으면 2등, 숫자 5개가 맞으면 3등...... 창수아빠는 숫자 한 개의 차이로 3등을 경험했다. 단 한 개의 아쉬움이 엄청난 금액을 더 간절하게 했다. 1등과 3등 사이에는 1억이라는 당첨금, 집 한 채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창수아빠의 눈에는 그저 숫자 한 개가 부족할 뿐이었다.


나는 나대로, 창수아빠는 창수아빠대로 고립되어 가던 그 해는 모든 것이 지루하게 보였고, 속초해물찜의 분위기도 변해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거들먹거리는 창수아빠의 빈정거림과 어디 식당이 맛이 없고 싸가지가 없다는 둥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가벼운 입놀림은 주변 사람들의 험담을 받고도 남을 판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다 보니 고모를 생각해서 가끔 일을 도와주던 나의 자발적인 도움은 거의 아동 노예 급의 착취라는 누군가의 신고도 뒤따랐다. 경찰 유니폼을 입은 사람 두 명이 고모를 찾아와 나에 대한 조사를 할 때에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어딘가로 보내질까 두려워 고모에게 찰떡 같이 붙어있었는데, 그때 일로 내가 속초로 오는 일에 엄마의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모를 향한 나의 마음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리고 동시에 헷갈렸다. 나를 지켜준 고모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이상하게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모의 진심과 나의 자리가 절실히 궁금해오기 시작했을 때는 고모에게 신체적 변화가 시작되었을 때와 맞물렸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변해가는 고모의 유난한 우악스러움이 아픔을 이겨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왜 그렇게 입에 달고 다니면서 번영회니 계모임이니 하는 것도 모두 그만두었는지, 왜 그렇게 깡패처럼 툭하면 말싸움을 벌였는지 말이다.

-씨이팔, 이판사판이다

'이판사판'이라는 대사는 고모의 몸부림이었다. 나와 창수아빠를 변호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2년이 흘렀다. 작은 항구 마을의 일몰 아래 늙어가는 속초해물찜이 버티고 있었고, 나는 중학생이 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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