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1월, 첫 생일 파티
속초에 온 지 어느덧 3년이 지나고 나는 4학년이 되었다. 유독 몸집이 작아서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로 오해를 사곤 했으나, 고모는 내가 말하는 꼬락서니 하나는 청산유수라서 당해낼 자가 없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다녔다. 고모는 가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에 관해 묻곤 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만 뒤늦게 교실을 나오는 내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니는 친구들 집에 놀러 안 가나?
-아니, 그게 아니고, 니 친구들도 좀 데리고 오고 그래야지. 니 왕따 아니나?
-왕... 따요?
내가 왕 따돌림을 받고 있는지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걸 니가 아나?
-학교 가면 짝이랑 할 말은 하고, 쉬는 시간에 애들이랑도 노는데요.
-그래, 니는 말발이 좋아서 친구들이 막 무시는 못하겠지?
뭐라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서 잠자코 있자 고모가 다시 걱정을 물어왔다.
-근데 가만 보면 니는... 친한 친구가 없이 보여서 말이지
고모의 세심한 관찰력은 가히 옳았다. 학교에는 나와 마음에 맞는 친구가 아직 없었다. 내가 선을 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주문진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어디까지 해야 할까도 고민이 됐고, 아빠와 엄마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건 좋지 않음을 경험으로 배웠기에 창수아빠에 대해서는 더욱 숨기고도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 창수아빠와 어떤 관계인지 물어온다면 늘 이렇게 대답할 거라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
-창수 삼촌
물론, 궁금해하는 친구도 없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를 계속 기다린 것도 같았다. 엄마가 오면 함께 주문진으로 돌아갈 마음의 채비를 하고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같다. 또다시 헤어진다는 건 슬프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떠나야 한다면 한 명이라도 덜 속상하게 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나의 인간관계는 친하다는 의미를 굳이 만들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고모는 내가 행여 엄마, 아빠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을까 봐 가끔 시장에 데려가 예쁜 머리핀도 사주고 공주 치마도 입혀주었다. 그 옷을 입고 어디 자랑을 놓아야 속이 시원했는지 고모는 그날 유난히도 내게 이런저런 관심을 가졌고, 마침내 결심했다.
-다음 주에 친구들 데리고 와라. 그 피자라도 시켜주게. 그거 사주면 애들이 니를 무시하지 않겠지
-고모는 곧 내 생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일파티라고 말은 못 하고 그저 친구를 데려오면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노라 말했다. 나는 아닌 척하면서도 고모의 말에 신이 났다. 고모는 바로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피자, 치킨, 순대, 그리고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창수아빠의 요리 솜씨를 이런 곳에 발휘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고모에게 창수아빠가 요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돈가스요, 돈가스! 돈가스 정말 맛있었어요!
언젠가 창수아빠는 야식 메뉴를 개발한다며 돈가스를 만들었다. 두툼한 돼지고기를 칼로 팍팍 두드리고 칼집을 내서 우유에 담그고 숙성시켰다. 비린내도 안 나고 고기도 연해진다는 이유였다.
-어떤 사람들은 뭐 양파랑 마늘, 매실, 사과 여러 가지를 갈아서 고기를 잰다는데 다 필요 없어. 이 우유 하나면 돼
-왜요?
-우유가 고기를 연하게 하고 비린내까지 잡아주지, 왜냐하면 그 우유의......, 거 참, 귀찮게 구네
창수아빠는 요리를 해줄 손님이 생겼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무도마에 고기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소스를 새콤하게 만들까, 달짝지근하게 만들까 연신 구시렁댔다.
-그냥 적당히, 새콤달콤하게 만들면 되는 거지 뭔 걱정이람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요리를 연습하는 창수아빠의 눈에서 별이 쏟아졌다.
생일파티 당일까지도 소스로 고민하던 창수아빠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넣은 상큼한 맛과 일반적인 돈가스 소스 두 가지를 내놓기로 결정했다. 나는 넓은 식당에서 단독으로 생일파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초대받은 친구들 대부분이 내 생일파티에 초대됐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마치 초대를 당했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잊고 지냈던 주문진 친구들도 생각났다. 이번 기회로 다시 친한 친구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 속초에서 창수아빠와 고모와 셋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찾아왔다. 진짜 가족 말이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속초해물찜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 모두 합해 열 명을 초대했는데 그중에서 일곱 명 정도만 오기로 되어 있었다. 고모는 식당 테이블에 비닐보를 깔았다. 조금 멋은 없었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상 위에 펼쳐진 분식과 피자에 곧 따끈하게 튀겨질 창수아빠의 돈가스까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침이 고였다. 고모는 시장에서 버터 케이크를 사 왔다. 반 친구가 도시락에 싸 온 적이 있는 하얗고 보들보들한 크림케이크를 맛보고 싶었지만 고모에게 너무 세세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남자 친구들 셋이서 먼저 만나 내 선물을 사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빨리 포장을 풀어보고 싶었다. 산호에게서 받은 적 있는 토끼 인형을 가져오지 못해 속상했는데, 선물 상자 안에 비슷한 인형을 상상했다. 산호도 이 맘 때가 되면 나를 기억하겠지.
돈가스가 튀겨질 때 느끼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채반을 거쳐 뚝뚝 흘러내리는 기름의 모양이 연상되었다. 그런데 정한 시간이 넘어도 왜 다른 아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는 것인지 초조해졌다. 고모도 언제 케이크를 꺼내놔야 하는지 눈치를 살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기다리는 기분을 몹시 견디지 못했다. 신체적 반응으로 바로 찾아오는 기다림의 스트레스, 그건 내가 조절하기 어려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끈적한 땀구슬이 맺히는 느낌이 몹시도 싫었다.
불길한 느낌은 엇나가지 않았다. 우당탕탕 깨지는 소리와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오갔다. 분명 날이 밝았었는데, 아직 이른 오후였는데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졌다. 엄마를 잃었던 날처럼. 속초 해물찜에서 엄마를 괴롭혔던 검은 드레스를 입은 뚱뚱한 아줌마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우연이 아닌 듯했다. 아줌마는 그때처럼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 두 명을 데리고 식당에 들어왔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저씨, 그냥 반바지를 입은 아저씨, 그리고 엄마를 데려가려 했던 저승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산호가 말한 걸까, 산호 엄마가 말해준 걸까? 산호가 산호 엄마에게 내가 속초로 간 사실을 말한 걸까? 산호는 왜 그랬을까, 내가 보고 싶어서?
-얘, 이 땅꼬마야
검은 드레스가 겁에 질린 나를 내려다보며 어깨를 툭 건드렸다.
-느네 엄마가 보냈단다
-엄마가요?
-엄마가 여기로 오면 나한테 갚을 빚을 받을 수가 있다고 했지
-엄마는 어디 있어요? 우리 엄마는요?
나는 내 입으로 내뱉는 엄마라는 말소리에 서러움이 폭발해 꺼이꺼이 울어댔다.
-네가 당하고도 몰라? 네 엄마를?
얼마 후, 친구들의 부모님과 경찰들이 찾아왔지만 이미 창수아빠와 검은 드레스 편의 아저씨들이 한 바탕 일을 치르고 난 후였으므로 모두가 경찰서로 가야 했다. 고모는 반 친구의 부모님께 나를 강제로 밀었다. 그리고 내 팔을 꽉 움켜잡았다. 금방 돌아올 테니 가만히 있기만 해라. 그건 약속이었다. 금진아, 코 자고 있어, 엄마 금방 올게. 그렇게 말하던 엄마의 말과는 달랐다. 그 약속에 나는 안심을 하고서 홀로 의자에 앉았고, 창수아빠는 뒤돌아보며 깨끗이 청소해 놓으라고 일러놓기까지 했다.
혼자 있는 식당 안은 정적이 흘렀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초대했던 친구들이 걱정되고 생각이 났다. 겁에 질린 친구들은 오늘부터 나의 친구는 아닐 것이다. 엄마가 있는 화투판에 친구를 데려갔던 다음 날, 반 아이들 앞에 불려 나가 창피를 당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내일 학교에 가면 나는 또 친구들 앞에 나가 선생님의 어떤 질문에 대답해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 엄마가 나를 달래며 도망치듯 나가버린 그날의 밤처럼 고모가 내 옆에 없는 지금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만 가득했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내 손에 잡혀 갈기갈기 조각내고 싶은데 자꾸만 보고 싶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