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금진 7

열네 살, 속초해물찜이 살다간 자리

by 소설 쓰는 라떼

그때까지 고모의 유일한 투자는 노동이었고, 창수아빠의 유일한 투자는 주택복권이었다. 내가 공부에 오기를 쏟았더라면 어른들이 말하던 넓은 폭의 선택지와 함께 개천에서 용 나는 전설이 되어 종일 일을 해도 부자가 되지 못하던 고모와 아무리 치장해도 뇌란 낯빛의 창수아빠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지, 감히 이루지 못한 일들을 상상한다.

두 사람은 내게 삶이란, 어렵고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흔한 인생 교훈을 주지 않았다. 창수아빠가 몸소 보여준 인생은 유산을 받거나 한 탕 크게 먹을 수 있는 데를 발굴해서 주머니에 있는 동전까지 탈탈 털어 흥하는 것이거나, '숫자 한 개만 더 맞았더라면'에 갇혀 종일 숫자들을 노려보며 주술적인 연결을 시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상이었다. 숫자에 갇혀 몰입하는 날에는 내가 잠깐 기척이라도 했다가 부정을 탄다며 종이 쪼가리들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방해를 받아서 신과의 연결이 끊겼다나 어쨌다나.

고모 또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질수록 감정도 흔들림도 심해졌다. 한 번은 동네 건어물 집에서 아는 사람들이 모여 모임을 하자 자기만 쏙 빼놓았다며 억울함을 토해냈다. 기분이 날 때마다 공짜로 해다준 요리가 얼만데 변변치 않은 애들 데리고 살아서 무시를 당한다며 나와 창수아빠를 노려보았다. 고모의 억울함은 지랄로 맞서는 것, 본인이 가진 성량보다 더 높은 소리를 장착하고 늘어진 배때기를 들이밀었다. 이치고 논리고 모르겠고, 배려라고는 조금도 없는...... 나랑 잘못 붙었다가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가 전부였다. 동네에 울려퍼지는 욕지거리는 한때 우리를 둘러싼 울타리처럼 보였는데 이상하리만치 나는 그 울타리를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창수아빠는 서른한 살이 되었다. 쉰 살이 조금 넘은 고모는 점점 근육을 잘 쓰지 못하는 병을 의심받고서 일을 하기 힘들어했다. 주 2회 이상은 물리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했지만 결국, 몸을 쓰는 일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단순히 나잇살이 쪄서 움직임이 둔해지는가 싶었던 고모는 무리해서 등산도 해보고, 계단도 올랐다가 상태만 악화시킨 꼴이었다. 고모는 마음까지 아파오는 게 힘들어 가게를 놓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방법이라 결정했다.


평생을 키워준 속초해물찜이 없어지는 게 뭐가 좋은지 창수아빠는 가게를 팔아 '신나는 분식점'을 냈다. 정확하게는 고모가 식당 대신 수입이 생길 부분을 고려해서 내 준 가게였다. 고모가 평생 끌어온 식당을 창수아빠 혼자서 운영할 깜냥도 안 됐지만 창수아빠가 그나마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손으로 뭐라도 해야 복권을 중단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창수아빠는 가게를 팔고 남은 돈을 더 쓰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하지만 고모는 분식점을 차리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여 꼭 필요한 데만 돈을 댔다.


-내가 몸이 굳었지, 입은 안 굳었다. 그런 줄 알아라

고모는 새 기기는 금물, 중고만 허락했다. 창수아빠는 자기 마음대로 나서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처럼 고모를 달달 볶아댔다.

-내가 딱 죽기 직전, 그러니까, 숨이 꼴까닥 넘어갈 때! 그때 준다!

-에이, 치사스럽다 누나! 지금 줘야 내가 돈을 번다고. 어차피 나 줄 거면 지금 줘라!

-네까짓 것이 뭔 투자를 해? 어디 어울려 노는 건달들한테 갖다 바치고 인생 후회할라고?

-하, 참 모르는 소리 또 지껄인다 누나야. 돈이 돈을 번다. 어? 모르나? 누나도 알제? 고급지게 해 놔야 사람들도 들어온다. 돈을 좀 굴려봐야 또 돈이 어찌 돌아가는지 안다!

창수아빠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으나 고모는 쥔 돈을 절대로, 헛되이 풀지 않았다. 고모의 몸은 점점 불편해졌지만 아직 돈을 쥔 자의 명령은 누구도 거역하지 못했다.


속초 해물찜이 있던 자리에는 촌스러운 붉은 네온사인이 반짝였다. 건너편 식당 사장님의 조카의 사위가 가게를 계약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노래방이 들어설 줄은 몰랐다. 노래방이든 비디오방이든 나와 아무 상관도 없으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불안이었다. 삼원색의 빛이 눈앞에서 일렁이면 나의 근간을 묻는 일이 잦아졌다. 일생을 바친 고모의 노고에 경의를 가지면서도 신나는 분식점의 불투명한 미래와 나의 미래가 섞여서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는 신체와 정신이 자라는 만큼 고모와 창수아빠를 자주 판단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판단하는 만큼 일기장의 글자들도 빼곡해져갔다. 엄마와 산호와 주문진, 이런 글자들은 점점 낙서가 되어갔다.


-사춘기고, 지랄이고, 니는 이제 신나는 분식집의 종업원이다. 알간?

창수아빠는 공짜로 부려먹을 나의 노동력을 기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였다. 분식집이 잘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교 후에 마땅히 있을 데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속에는 종녀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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