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조용히,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몰랐으면 좋겠는 날. 누구와 트러블이 있거나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닌, 그냥 외부와 '소통'을 하고 싶지 않은 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온전히 나와의 시간에만 충실하고 싶은 날이 있다. 매일 집에서 만나는 가족과도 최소한으로 대화하는 것. 오로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생각들과 마음에 온전히 집중해 에너지를 채우는 일.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들이 거의 없이, 내 안의 것들을 오롯이 다 품고 그대로 지속시키고 싶은 마음. 말을 할 때마다 소통을 할 때마다 피로감이 한층 한층 누적되어 곧바로 누워 잠들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지경까지는 가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단체 톡방, 일명 단톡이 버거울 때가 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에 위로받고 행복감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일종의 소음으로 느껴질 때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의 숫자만 봐도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읽어보고 싶지 않은데 또 어떻게 단톡방이 돌아가는지는 알아야겠기에 다 읽지는 않고 전반적으로 중요한 분위기만 훑어본다.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가 없을 때에는 그냥 넘어가고, 그래도 대화들이 좋은 느낌일 때는 나도 한두 마디 곁들인다. 여럿 있는 단톡은 읽고 대답을 안 해도 되지만 몇 명 없는 톡일 경우에는 읽고 메시지를 남기지 않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굳이 대답하기 싫을 때에는 이모티콘을 남기거나 상대 메시지에 하트를 누른다. 읽고 항상 반응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내가 쓴 글을 읽고 아무도 아는 체해주지 않는다면 분명 상처받을 거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에 대한 반응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단톡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을 잘하는 편이라 지인들이 내게 자주 전화를 한다. 그럴 때면 솔직히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가슴이 철렁한 적도 많다. 분명 통화를 하면 최소 수십 분에서 몇 시간이 지속될 텐데, 상대의 고민을 하염없이 듣다 보면 점점 기운이 빠지고 그날 내가 해야 할 일들, 집안 청소라든가 그날 하려고 했던 일들을 미뤄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하지만 나에게 상담하느라, 안부를 묻고 전하는 친목의 이유들로 오는 전화를 걸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나를 믿고 좋아하는 마음인데 내칠 수는 없다. 다만 적당히 이야기하고 끊어주었으면 좋겠는데 하염없이 상대방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듣고 통화가 끝나면 맥이 탁 풀린다. 적당히 바쁜척하며 전화를 끊는 요령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야기를 듣는 중에는 이야기에 푹 빠져 한없이 들어주다가 결국은 쉰 목소리와 탈진한 나만 덩그러니 남는다. 초반에는 즐거웠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기가 빨리는 느낌.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어느 날 상대방에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또 푹 꺼진다. 또 오늘은 얼마나 멘털이 털려야 전화가 끝나는 걸까 싶은 생각에.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먼저 거의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내 힘든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내 말할 용기도 없고,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로 상대방의 시간을 사용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웬만하면 상대방이 확인 가능할 때 대답할 수 있도록 카톡으로 할 말을 보내고, 정말 급하거나 꼭 필요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전화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남에게 피해 주거나 신세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상대방도 나에게 크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가끔 보고 싶을 때 오프라인에서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다운 시간을 갖는 게, 나는 전화나 메신저보다 훨씬 좋다. 가급적 친목은 얼굴을 보면서 하고 싶다. 꽤나 아날로그적인 나란 사람, 요즘 시대엔 답답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나인걸.
11회의 연재를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1달간 쉬면서 무슨 주제로 써볼까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동안 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6년에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