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가 되고 싶었어

애송이의 사랑

by 벨라Lee

“3월 19일 생방송 가요톱텐 이번주 1위는 (두구두구두구두구) 애송이의 사랑, 양파.”

“조금만 더 가까이 내 곁에 있어줘. 널 사랑하는 만큼 기대 쉴 수 있도록”

가요톱텐 최연소 1위 가수, 양파는 18살, 나도 낭랑 18세.




집과 차에서 하루종일 라디오,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으시는 엄마 덕분에 음악 없이는 못 살던 소녀. 어릴 때부터 친척들과 가족 야유회를 가면 예외 없이 모두 돌아가며 한 곡씩 불러야 하는 노래방 코너가 있었다. 앰프에 연결된 진짜 마이크를 들고 가수처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들이의 하이라이트이자 어른들의 포복절도 시간. 철없던 꼬꼬마 시절엔 가수 나미의 '마지막 인사'를 기가 막히게 뽑아냈단다. 그 당시 나미 언니가 상종가라 TV만 켜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세뇌가 되어 언니의 몸짓과 창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나 보다. 물론 이건 어른들의 증언일 뿐 본인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수년째 진행되는 집안의 장기자랑 코너가 슬슬 부담되기 시작했다.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인데 엉성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 귀엽다며 깔깔 웃어대는 어른들이 싫었다. 그렇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부르기 싫어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차례가 오면 아닌 척 노래를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요염한 자태도, 간드러진 목소리도 없다. 그저 후딱 나가서 한 곡 때우고 들어오자는 책임감만 있을 뿐.




철이 들고부터 누구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던 조용한 아이는 매주 시청하는 가요톱텐 1위 가수의 앳된 얼굴을 보고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데, 어른들만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에 어떻게 나왔고 1위까지 한 거지? 애들이 가수 해도 되는 거야? 오만가지 생각이 들며 저 소녀를 조사해 보고 싶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즉시 검색 하기도 어려워 잡지나 TV,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가장 먼저 나이가 궁금했는데 어느 날 켠 TV 프로에서 18세 고등학생이라고, 공부도 아주 잘하고 영어도 잘한다는 소개를 보게 되었다. 어라, 나랑 동갑이네. 나는 쟤 한 명을 보고 있는데 쟤는 자길 봐주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잖아. 왜 갑자기 없던 질투심이 끓어올랐을까. 양파는 또 무슨 뜻이야? 자기 이름은 뭔데 채소 이름을 들고 나왔어? 알고 보니 양파라고 예명을 지은 이유는 매력이 까도 까도 계속 나오기 때문이란다. 역시 똑똑한 애는 다르네. 철학적이잖아.

이후로 양파의 인생을 내 인생과 동일시하기 시작했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이때 본격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양파처럼 되고 싶었고 양파 그 자체가 되고 싶었다. 말을 조리 있고 지적이며 교양 있게 하고 싶었고, ‘애송이의 사랑’을 싱크로율 100프로 완벽하게 불러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CD를 수천 번 반복해 들으며 발성, 발음을 익혔다. 얼마나 지겹도록 들었으면 남동생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부를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양파가 되어갔다.



20살 초겨울, 서울음반 가수 오디션에서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을 불러 합격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연습생 신분이 시작되는 것. 하지만 대입에 낙방을 하며 가수의 길은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양파 또한 수능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아져 1교시 후 시험을 포기해 국내 대학의 길은 닫히게 되었다. 역시 그녀와 나는 운명 공동체일까. 신기하게도 고배의 슬픔보다는 위안과 안도감이 들었다. 이후 양파는 해외로 유학을, 나는 재수생의 길을 택하며 우리는 닮은 듯 다른 듯 서로의 길을 떠났다.


양파는 1년 후 ‘다 알아요’가 수록된 3.5집을 내며 가수로서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고등학생 때의 풋풋하고 낭랑한 보이스에서 기술적으로, 감성적으로 훨씬 풍성하고 깊어진 음악성으로 또 한 번 감동을 주었다. 다양한 시련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놓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참 잘 걸어가고 있어 대견했다. 나의 롤모델이자 지금까지도 가수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준, 어리지만 당찼던 그날의 양파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그리고 그녀를 동경한 시간 동안 노래에 대해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내 모습을 사랑한다.


히든싱어 새 시즌에 양파가 나온다면 꼭 도전해 볼 요량이다. 너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양파야.

"이은진(양파 본명) 브라보, 멋지다! 이은진"



(사진출처: 애송이의 사랑 VIBE(바이브)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