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글을 쓰고 읽을 줄 알게 된 무렵부터 나는 명절, 누군가의 생일이 돌아오면 항상 카드를 썼다. 명절에는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생일에는 조부모님, 부모님, 남동생은 물론이고 고모댁, 삼촌댁, 친구들에게도 카드를 썼다. 어버이날에도 당연히 부모님께 카드를 써드렸고,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즐거운 날이라는 의미가 컸기에 역시 카드를 써서 부모님과 조부모님, 친구들에게 전달했다.
이건 친정엄마께서 나와 남동생이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들여주신 습관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어려서 선물은 엄마가 대신 준비해 주셨지만 카드는 꼭 손수 쓰게 하셨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우리 집의 풍습이라면 풍습인 '이벤트 주인공에게 카드 쓰기'는 새로운 식구가 생겨도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참, 지금의 남편과도 연애 시절부터 기념일, 생일마다 서로 카드를 주고받았는데 이또한 내가 그에게 남자친구인 시절부터 들인 습관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혼을 했고 새로 맞이한 시부모님 생신에도 역시 꼬박꼬박 카드를 드렸다. 아버님은 '아이고,바쁜데 뭐 이렇게 카드까지썼냐.'라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선물보다도 카드에 시선이 더머무셨던모습에 참 흐뭇했었다. 어찌 보면 종이 한 장일 뿐인데그위에 내 마음이 담긴 글씨들이 하나둘씩새겨지면서'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재해석되는 신비함이 있었다. 나의 스위트한 마음 한 스푼이 받는 이에겐 감동의 꿀단지로커지는마법이 내가 카드를 계속 쓰게 하는 큰 원동력이었다. 요새는 기프티콘으로 생일 선물을 하는 경우도 많아져 직접 지인들을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는 아주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꼭 하는 일은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는 메시지를 지우고짧을지언정새로작성해서보내는 거다.나의축하가상대에게진심으로 닿길바라며.
우리 가족의 카드 쓰기 풍습에 올케도 예외는 아니다. 시아가 2살이 되던 해에 처음 만난 상냥하고 코스모스같이 고운 올케는 결혼하고부터 10년째 쭉 이에 동참 중이다. 외숙모 생신에 아기 시아의 엉망진창그림으로 시작된 축하 카드는 올케에게도 전파가 되어 이후 시아의 생일에 감동의카드로 되돌아왔다. 글을 읽지 못하는 시절부터 외삼촌 부부에게 받았던 다양한 내용의 카드들이본인을 사랑하는 마음의메신저라는 것을 시아도 잘 알고 있기에 매년본인도카드에열심히글을 적고 정성스럽게그림을 그리고스티커로예쁘게장식을 한다.
올케가 보내준 카드
이제는 동생 부부의 아들, 딸인 우리 조카들이 그 풍습을 이어받아 내 부모님과 우리 가족 생일, 크리스마스에 꼭 카드를 써준다. 이 또한 친정엄마께 배운 것을 동생이그대로교육했을 거라짐작한다. 물론 나도 시아에게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시아와 조카들이 써준 카드. 둘째 조카는 아가라 발도장만 꾹 찍어 보낸게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어린 시아가 내 생일에 써 준 카드
매년 3월이 되면 우리 집안에서 가장 먼저 생일을 맞는 올케에게 카드 쓰기가 시작된다. 3월은 많은 것들의 시작과 출발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우리도 마침 3월에올케의 생일로 카드 쓰기 릴레이를 시작할 수 있어 그 의미가 반갑다.
카드 안에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지 않아도 된다. 빼곡하게 글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필요 없다. 오로지 상대를 애틋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만 전해진다면 그 이상 멋진 카드가 어디 있을까.서로의 소중한 마음을 전하고 건네받는 것에서오는진한 위안이오늘의우리를 더잘살아보게끔만드는 힘이 되는 게아닐까.
3월, 5월, 6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은 이벤트가 있는달이라 좀 바쁘다. 3주 전에 부지런히카드를써서 우체국에 부쳐야 비로소 완료이기때문이다. 거리가 있다 보니 우리가 동생 네에 카드를 보내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네가 우리에게 보낸 카드가 도착하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훌쩍 가있다. 5년 전부터 한국에 없는 동생네가 보고 싶어 더더욱 우리에게는 마음의 끈과 같은 '카드 쓰기'가 중요한 일이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이야기하고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글로도전하는따뜻한 습관이 앞으로도쭉 이어져,시아와조카들도항상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귀히 여기며 살 수 있기를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