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모르면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by Ann


뿌리에 대한 호기심이 약간 있다. 남들보다는 아니지만 내 성향 중에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처음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종종한다. 매듭 푸는 것에 집착하는 것도 그 일환일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찾는 것에 약간 집착하는 편이다. 게을러서 남들보다 더 그렇지는 못 한다.




학창 시절엔 그저 공부라는 게 싫어서, 외우는 게 싫어서 멀리했던 국사 공부를 바로 그 성향 덕분에 뒤늦게 시작하게 되었다. 공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관심이라고 해야겠다. 국사에 대한 관심. 뒤죽박죽 되어 있는 나의 한참 모자란 국사 지식들을 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이은 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원인인지 뿌리를 향해 가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아마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창피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굵직한 부분들은 알지만 그게 어느 맥락에 있는 건지 알지 못한 채 창피해하기에는 남은 시간들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가볍게 읽기 시작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을 올해 10월 초에 모두 끝냈다. 정말 끝냈다는 말이 어울린다. 20권 모두 읽게 될 줄 몰랐는데 시작을 말았어야 했다. 1권을 시작하니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153017




이 책이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을 줬다. 모두 끝내고 나니 비로소 앞뒤 정리가 됐다. 나는 선조와 이순신이 같은 시대였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선조는 선조, 이순신은 이순신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 무지렁이였던 내가 선조가 이순신과 자신의 아들 광해군에게 보인 질투에 혀를 차는 사람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권력욕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됐으며, 영조의 선택을 보며 조선시대 왕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100배는 더 많지만.




어쨌거나 500년 조선왕조, 조선시대의 역사를 죽 훑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태조부터 망국까지 차례대로 훑어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들었다. 분노와 안타까움이 그중 가장 농도가 짙었던 것 같다. 특히 망국에 가까워져 갈수록 그런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점점 발전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다 아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으니까.




한국 사람이면서도 무지해서 왜 우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나라를 빼앗기고 그 많은 수모와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금 눈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 궁금증의 처음을 찾은 것이다. 조선은 조선 안에 갇혀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 일본은 어느새 우리를 쉽게 집어삼킬 만큼 몸집이 커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35696



이 책을 읽고 나서 접한 책은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었다. 20권짜리를 읽고 나니 한 권짜리는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정말 생각보다 빨리 읽었다. 꽤 두껍지만 e-book으로 구매해서 가지고 다니기가 편해 좀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한 번 훑어본 후 읽으니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가볍게 짚고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지만 좀 더 읽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실록에 실린 글귀가 그대로 들어간 부분들도 많고 등장인물들이 조선시대 언어를 쓰기 때문에 낯선 부분도 있다. (크게 어려운 부분은 아니지만.) 반면에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얘기해주듯이 구어체를 써 가며 풀이를 해주기 때문에 훨씬 쉽게 느껴진다. 각각의 장점이 뚜렷한 책인 것 같다. 두 권을 모두 읽은 것이 나에겐 아주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84564




조선왕조실록의 마지막 편이 망국이다 보니 일제 강점기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심장이 뜨거워진 상태에서 재빨리 일제 강점기와 현대사를 다룬 책을 찾았다. 내 눈에 띈 것은 <한국사를 보다 5권>.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랐다. 내가 이 정도로 무식했나 하는 것 때문에 놀랐고, 지금의 모습과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하게 겹쳐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놀랐다.




독립운동에 대한 얘기는 워낙 많이 들어오고 봐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훨씬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는 것이다.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끈질기게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방관하거나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을 하던 중에도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그들 모두를 잊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암살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우리 잊으면 안 돼!"




그런데 좀 의아했던 건 독립운동의 결과로 좀 더 통쾌하게 극적으로 일본이 항복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난 전혀 몰랐던 부분이다. 어쩜 이렇게 무식할까 다시 한번 느끼면서...... 미국의 원자 폭탄 투하 때문에 일본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된 것이었고, 우리의 자주독립을 위한 준비 사항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미국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 결국 독립마저도 시원하게 쟁취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고 분한 부분이었다.




왜적이 항복한다 했다.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이다. 시안과 푸양에서 훈련을 받은 우리 청년들에게 여러 가지 비밀 무기를 주어 산둥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들여보내어 국내의 중요한 곳을 파괴하거나 점령한 뒤에 미국 비행기로 무기를 운반할 계획까지도 미국 육군성과 다 약속이 됐던 것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했으니......
- 김구의 백범일지 중에서 -




두 번째 놀랐던 부분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정확하게 겹쳐지는 듯한 느낌 때문인데 그 부분이 바로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다.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 행위를 규탄하는 시위 도중 경찰이 던진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안타깝게 희생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있었다.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자연스럽게 얼마 전 안타깝게 돌아가신 백남기 선생님이 떠올랐다.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IMG_5446.JPG








일제 강점기, 현대사를 다룬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부분은 각각 해석이 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대한 입장이라던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 김대중, 김영삼 정부에 대한 입장이, 관점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좀 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듯 보인다. 역사 바보인 나에겐 아직 그 어떤 입장, 관점이 있을 수가 없기에 좀 더 다양한 의견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권을 더 찾았다. 바로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 현대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이제 막 시작해서 아직 어떤지 잘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들을 경험해 볼 생각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768709




뿌리를, 처음을 찾고 싶어 했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역사책들을 읽고 나니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려고 책을 본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사까지 훑어보고 나니 관심이 생겼다. 조금이나마 이 나라에, 정치에, 경제에 관심이 생겼다. 지나간 과거를 보며 안타까웠던 마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몰랐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 되었다. 모르면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 내버려두면 그 내버려둔 대가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결국 관심을 가지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걸 직접 몸소 깨닫게 되었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재미있게 역사를 알아가게 되어서 설렌다. 너무 늦어서 창피하긴 하지만. 이제 조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내가, 우리 부모님이,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이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른다는 것'에 대한 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