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모른다는 것'에 대한 무지.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by Ann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낯선 나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때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할 수가 있구나. 그렇겠구나.



내가 나의 생각을 마주칠 때가 있다. 내가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나도 모르게 마주치는 것이다. 그때 나는 너무 놀란다. 생각보다 위험한 나를, 용감한 나를, 나약한 나를 만나고 놀라고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




하물며 타인은 어떻겠는가.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 내 가까운 친구들에 대해 안다고 해봤자 얼마큼이나 알 수가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마주칠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난 많은 것을 숨기며 살고 있다. 숨긴 것도 있고, 몰라서 드러내지 못한 것도 있다. 나는 슬플 때 웃은 적이 많고 힘들 때 덤덤한 척 한 적도 많다. 힘들지 않은데 힘든 척 한 적도 많고 괜찮은데 괜찮지 않은 척할 때도 있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에게 잘 속는다. 그리고 나조차도 나에게 속는다. 타인들도 분명 나를 속이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미소 뒤에 어떤 슬픔이 숨겨져 있는지, 동생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안에 어떤 고통이 숨겨져 있는지, 아빠의 무표정 안에 어떤 고민이 들어 있는지 나는 대부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타인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속이며.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최악의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불행을 맞이하게 되는 것만큼은 피하기 위해서.




여기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불행을 맞이한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의 어린 아들이 학교 친구들 수십 명을 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을 했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학생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 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처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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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클리볼드는 남편, 아들 둘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생활은 1999년 4월 20일 이후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의 막내 아들 딜런은 친구 에릭과 함께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친구들과 선생님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자신은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다. 그녀의 삶은 그날 이후로 수 클리볼드의 삶이 아니라 악마 같은 가해자의 엄마의 삶으로 완전하게 바뀌어 버렸다.




그녀는 처음엔 좀처럼 믿지 못 했다. 그녀는 아들이 누가 봐도 정상적이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반복해서 얘기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그렇게 단정 지었다는 것, 자신이 그 아이에 대해 안다고 확신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 아이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자살을 염두에 두고 그날 학교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콜럼바인 이전의 우리 삶이 너무 평범했다는 점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일 것 같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기도 하다. 우리 집안 형편이 어렵다거나 힘들지도 않았다. 우리 집 막내는 속을 썩이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리라고는 우리도 그 아이를 아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일들은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들이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 보일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면 하는 소망이 가장 강하다."




그녀의 뼈져린 후회로 가득 찬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다 진이 빠진다. 그 후회가 너무나도 농도가 짙어 책 밖으로 배어 나와 나에게도 묻어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일부러 가볍고 재밌는 책을 읽어야 했을 만큼 힘들어했다. 사건 자체도 끔찍했고, 그녀가 겪어야 했을 모든 고통과 슬픔도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공감하는 순간순간 힘들었고 나는 자꾸 내 주의를 환기시켜야 했다. 그만큼 이 책은 진심을 담은 감정이 농축되어 있다.




가해자를 두둔할 마음 따위 전혀 없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도 가해자의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옳은 생각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 책은 그것과 전혀 방향이 다르다. 가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책이 아니다. 가해자의 엄마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과 바꾸고 싶은 과거의 일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후회를,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것들을, 그리고 그것에서 얻은 무언가를 알리려는 책이다. 끔찍한 희대의 살인 사건 뒤에 감춰져 있던, 우리가 알지 못 했던,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들을 보여주려는 책이다. 그 진심이 결국 그녀에 대한 오해를 존경심으로 바꾸게 했다.





뒤늦게 경찰이 전달한 딜런의 일기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심각한 우울증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이 일기장을 미리 볼 수만 있었다면, 하고 수는 후회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 생각은 다르다. 한 사건, 문제의 원인은 단 하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을 조각조각 내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결과 원인은 수만 가지였다. 딜런은 반사회적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친구 에릭과 함께였다. 딜런도 그들의 부모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뇌 건강에 이상이 있던 아이였고, 그의 학교는 모두가 불행을 예상할 정도로 많은 문제가 묵인된 채 운영되고 있었고, 아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불법으로 구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도 있었고, 아이들의 뇌 건강이 얼마나 큰 문제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어른들의 인식 문제도 있었다. 작게는 이런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해 모방 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언론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이처럼 한 사건, 문제의 원인을 단 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쌍둥이 같은 사건들이 또다시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총기 난사 사건이 그저 악마 같은 아이들의 분노 때문에 발생했다고 결론지어 버리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사건이 끝나 버리고, 같은 일은 모두를 비웃으며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 데(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따금 나는 이러저러했더라면 이 일이 다르게 끝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몽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 몽상은 늘 다른 학교에서 시작한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난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무심코 내려버린 결론이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의심할 때 우리 사회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 이면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이 경험이 콜럼바인 이후에 내가 겪은 일들과 여러모로 닮았다. 나는 나 자신, 내 아들, 내 가족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나 자신, 내 아들, 내 가족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아이가 괴물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의심하지 않는다. 들여다보지 않는다. 조심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는다. 삶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순간 불행이 그것을 완전히 비웃으며 닥쳐온다. 이 책은 나를 전보다 훨씬 더 겸손해지도록 만들었다. 함부로 잘난 척 할 수 없도록. 함부로 안다고 생각할 수 없도록. 다시 처음부터, 아니 늘 처음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모두 용기를 내어 이런 책을 써 준 수 클리볼드 덕분이다. 그녀 덕분에 내가 나에게 올지도 모를 어떤 끔찍한 불행을 막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나 자신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 




부모가 그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세상에서 나만큼 더 잘 아는 부모가 없을 진실이 있다. 바로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딜런을 무한히 사랑했지만 그래도 딜런을 지키지 못했고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살해된 열세 명도, 그 밖에 상처입고 고통 받은 사람들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딜런이 심리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만약 내가 제대로 보았다면 딜런이나 딜런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








ㅣ책 정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 부모의 슬픈 고백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인 이 총격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이들이었기에 사회적인 파장이 더욱 컸으며, 그 후로 이 사건을 모방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건 발생 17년 후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으로,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또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하고 있다. 사건의 발생 이유, 사건을 벌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해자 가족들이 겪은 생각과 감정들이 솔직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은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이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갑게 고발하는 여타의 책과 달리, 바탕에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깔고 있는 ‘어머니’가 써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설득력 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3717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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