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어떤 교훈을 주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수많은 감정에 공감해볼 수 있는 소설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의 이름이다. 이 책을 읽은 지 2주가 지났다. 희한하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인데 보고 싶어진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희한한 경험이다.
그만큼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이 굉장히 현실적이고 생생했다. 어떨 땐 내가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과 닮았다가, 닮고 싶은 쿨한 큰 언니 같은 모습도 보였다가, 집 안의 큰 오빠처럼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안쓰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그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보면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저런 모습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지. 우린 모두 완전치 못한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잖아.'
이 작품은 단편 소설들이 연결되어 있다. 각기 다른 주인공들과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배경과 몇몇 등장인물들은 고정되어 있다. 그 중심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이런 형식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았다.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크고 단단한 나무에 열린 열매들 같은 이야기들. 새로운 에피소드로 넘어가지만 그 안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등장하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든다. 마치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이 소설 속에는 다양한 상황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상처와 비밀들을 안고 살아간다. 멀리 떨어져서, 소설 밖에서 그들의 각기 다른 삶을 들여다보니 삶이란 사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순간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면서 살지만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아닌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삶도,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그런 삶을 살아간다. 참 냉정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때론 위로받으면서 각자에게 허락된 만큼의 삶을 살아내고 또 떠나간다.
단편 소설이 거의 그렇지만 이 소설을 줄거리 위주로 읽는 것보단 등장인물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며 읽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오래 읽으면서 말이다. 이 소설을 단숨에 읽는 것은 무의미하다.
소설이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의 나이도 늘어가고 올리브 키터리지도 할머니가 된다. 그녀의 노년의 생활, 생각들을 들여다보면서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도 여자이고 남자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매년 내 나이를 어색해하듯이 그들도 마찬가지겠구나. 그들도 질투를 하고,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는 존재들이구나. 그런 뜨거운 감정들을 왜 젊은이들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했을까. 약간의 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 어르신들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성숙한 어른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이가 많다고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늘 고려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내가 종종 느끼는 스트레스들이 이 다짐으로 인해 조금은 사그라들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 그녀는 꼭 살아있는 사람 같다. 늘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 그래서 희한하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 소설이 끝난 이후의 삶에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만약 그녀의 부고가 나에게 날아온다면 난 무척이나 슬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