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우리에게 유난히 각별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냐고? 이 영화의 이야기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는 그 일을,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자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는 '메디안 치약'이다. 이제 브랜드 이름이 검색 순위에 올라오면 클릭해보지 않아도 안다. 저 제품에 문제가 있구나. 누군가가 묵인하고 넘겨버린 일이 또 발견됐구나. 아니나 다를까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되어 있는 독성 물질이 치약에 들어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내가 쓰는 치약이 메디안 치약이었다. 이런......
인체에 무해하단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까? 건강한 사람들에겐 그럴 수 있다지만 조금이라도 그 부분에 취약한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 아닐까? 기사의 말미에 적힌 인체에 무해하단 글이 아직도 멀었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기사 자체도 맘에 들지는 않는다. 기사를 보고 쓴 기사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곧 끊어질 것 같은 가는 숨을 쉬며 코에 튜브 같은 것을 꼽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그것들을 조사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들 중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묵인하고, 방관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그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다치게도 했다. 그들은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침몰해 가는 한 배의 선장은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뒤에 두고 선두 그룹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침몰해가는 배를 비추며 전원 생존했다는 보도를 했다. 며칠 후 그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 밖으로 나오지 못 했다. 알고 보니 그 배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묵인하고 방관하고 조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멀쩡하게 육지를 돌아다닌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같은 결과가 일어날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런 상황에 둘러 싸인 채로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을 보게 되었다. 마치 난 교육 현장이 나와 있는 사람 같았다.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교과서처럼 느껴지는 저 내용이 실화였다. '아, 실제로 저럴 수가 있는 거구나. 실제로 저런 사람들이 있구나.'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155명의 사람을 실은 비행기가 새떼와 충돌하여 두 개의 엔진을 모두 잃고 추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다. 하지만 그 비행기 안의 155명의 사람들은 모두 생존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행운'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힘으로 일으킨 기적이었다. 기장 설리와 부기장, 승무원들, 승객들, 구조대 기타 등등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최선을 다해서 해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승객들은 자신들의 삶이 오늘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승무원들이 시키는 대로 침착하게 지침을 따른다. 승무원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객들을 진정시키고 지침을 내리고 그들이 그 지침을 따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는 도중 부상을 입기도 한다. 부기장은 기장을 믿고 그의 지시를 즉각 따르고 돕는다. 기장은 당황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해 나간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손을 떼지 않고 비행기와 승객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비행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그는 조사원들의 표현을 바로잡는다. 추락이 아니라 착륙이라고. 그 덕분에 비행기는 무사히 강 위로 착륙하고 물이 점점 차오르는 비행기 안쪽까지 다 확인을 한 후 가장 마지막으로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간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를 빠져나와서도 관계자에게 승객들의 상태를 묻는다. 승객 모두가 생존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그는 자신을 돌본다. 이 영화는 특별히 극적인 상황을 묘사해서 감동을 끌어내지 않고 이런 모습들을 관찰하듯이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이 장면들이 나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줌과 동시에 직업윤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55명의 사람들이 모두 생존할 수 있었던 건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한 결과로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포함하여 155명의 승객들을 살리고도 자신의 판단이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니었는지, 오히려 자신이 사람들을 위험 속으로 데리고 들어온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생각하고 고뇌하는 설리를 보면서 정말 숭고한 사람이구나,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고 돌아보는 설리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풀어가는 연출이 정말 좋았다. 우리가 진짜로 봐야 하는 건 그런 거니까. 기적적인 사건의 결과 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듯한 감독의 시선이 좋았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감동적인 사건이었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사실 사건 자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 사건은 설리의 기억에만 의존을 한다. 설리가 기억을 떠올리면 플래시 백으로 돌아가 설명하는 식이니까. 내가 놀란 건 이 영화를 보면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중심으로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설리의 의심, 고민, 혼란을 따라간다. 혹시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그땐 내 판단이 옳았다고 확신하고 행동했지만 정말 조사관들의 말대로 오히려 내가 승객들을 위험에 빠트린 거라면? 승객들이 모두 무사했고, 모두가 기장 설리에게 감사해하고 온 나라가 그를 영웅으로 추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인 나도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설리를 응원하게 된다. 설리의 판단이 옳았기를. 그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는지 그 반대였는지 밝혀지는 그 순간까지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이렇게 연출할 생각을 했을까 감탄스러웠다.
조금은 낯간지럽지만 쿠키 영상으로 실제 인물들이 스크린에 등장하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보통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에 꼭 등장하는 장면들. 갑자기 영화로부터 확 빠져나오는 느낌이 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장면 자체가 주는 감동도 있었다.
톰 행크스의 연기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연기는 언제나 옳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혼란스러운 내면, 기장으로서의 카리스마, 다정함과 세심함, 전문적인 모습 등등 어느 것 하나 어색한 부분이 없는 완벽한 설리의 모습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과 메시지, 끝까지 유지하는 긴장감, 연기 모두 정말 좋았다. 억지로 영화의 이야기를 늘리지 않아 더욱 좋았다. 상영 시간이 약 90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정리를 하면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나 또한 돌아보게 됐다. 내가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내가 지켜나가야 할 나의 직업윤리와 나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다짐했다. 무엇이 중한지 이쯤에서 모두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영화 정보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4847
이 영화는 다음 브런치 측의 시사회 초대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다음 브런치 측에 감사드립니다 :)
이 영화에 대한 글은 다음 브런치 측의 요구로 쓴 글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