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숨결이 바람이 된다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좋고, 애잔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품에 꼭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희한하게 그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 나는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내가 곧 죽는다면 무엇을 가장 후회할 것인가. 나에 대해 가장 농축된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죽음을 떠올리면 말이다.
나에겐 원대한 꿈같은 것은 없다. 사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 나는 바라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 나에겐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곁에 있고, 닭갈비, 생크림 카스테라, 떡만둣국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고, 뜨뜻한 물이 원하는 만큼 나오는 화장실 딸린 집이 있고(부모님 집이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있고, 글을 쓸 자유가 있고, 조금 빌빌거리긴 하지만 아직 건강한 몸이 있는데 뭘 더 바랄까. 크게 보자면 말이다. 지금 당장 맥도날드 츄러스가 너무 먹고 싶은데, 그런 거 말고.
난 그저 지금처럼만, 딱 지금처럼만 지냈으면 좋겠다. 성당 갈 때마다 짤막하게 내가 하는 기도는 그것뿐이다. '지금처럼만 살게 해주세요.' 이것도 큰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잘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잘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잘 되면 정말 좋겠고, 아니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크다. 어른들은 이런 나를 보며 '넌 젊은 애가 어쩜 그렇게 열정도, 욕심도 없니?'하시지만 나름대로 내 속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나만의 열정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끓어넘치진 않았으면 한다. 늘 그렇게 보글보글 넘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길 바란다. 최대한 길게. 좋아하는 것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할머니가 되어도 언제까지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취미가 되었으면 하니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후회는 거의 비슷하더라. 사소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크다. 어쩌면 나는 그런 후회들을 하고 싶지 않아서 사소한 것들에 목숨을 거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일찍 그것을 알아버린 것에 대한 부작용일 수도 있고, 효과일 수도 있고. 후자이길 바라지만.
어쨌건 매일 열네 시간이나 일해야 하는 힘겨운 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의과 대학원 학생에서 신경외과 교수로 가는 여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혹독한 수련 기간도 벌써 10년이 지났고, 이제 열다섯 달만 더 버티면 지겨운 레지던트 생활과 완전한 이별이었다.
서른여섯 살에 나는 정상에 올랐다. 드디어 약속의 땅이 눈앞에 보였다. 길르앗에서 예리코까지, 그 너머 지중해까지. 이제 주말 휴가도 떠날 수 있다. 멋진 보트에 루시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을 태우고서, 근무 일정이 수월해지고 삶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허리 통증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에게 약속했던 모습의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당장 내일 죽을 걸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죽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내일 죽을 것처럼 살다가는 혹시 죽지 않아 생기는 골치 아픈 일들을 감당하느라 남은 생이 너무 고달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사는 건 다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사는 것. 그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엄마에게 짜증 부리는 나를 멈춰 세우고, 즐거운 시간 속에서 나쁜 생각들, 걱정들을 밀어내 버리고, 다음에 보자는 말보다 지금 보자는 말을 더 자주 하고, 정신없이 뛰어가기보다는 조금만 천천히 걸어보고, 좋아하는 것 앞에서 쓸데없이 망설이지 말고.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운이 좋아 아주 많이 남았다고 해도 어떤 경우에도 좀 덜 후회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좋고 안전한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죽고 난 후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분명 좋은 의사였다.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친구였는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좋은 사람이었을 것 같지만) 좋은 의사였던 것은 확실하다. 이 책에는 그가 환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일에 대해 얼마나 확실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병원을 자주 다니는 나로서는 이런 의사를 만나는 것을 천운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니, 과연 있기는 할까? 의사들의 딱딱하고 기계적이고 귀찮아 보이는 듯한 느낌은 내가 만난 의사 선생님들의 90%가 일치했다. 폴 칼라니티 같은 의사를 본 적이 없다. 폴 칼라니티는 지옥 체험을 하는 것처럼 힘들고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얼마나 직업의식이 필요한 일인지,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 일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그런 사람이 해야 하지 않을까.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환자들을 귀찮아하고 기계적으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애초에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힘들게 일하시는 좋은 의사분들도 분명 어딘가엔 계시지만)
한편으론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비판의 질문을 던졌다. '넌? 넌 그렇게 일하고 있니?' 나도 글을 쓰는 일이 돈을 버는 직업까지는 아니지만 이 일이 누군가에게, 이 사회에, 이 우주에 먼지보다 작을지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그런 숭고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발톱의 때만큼도 따라갈 수 없겠지만 글 쓰는 일을 대할 때 나의 마음 만은 그렇다. 희한하게도 오히려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내가 더욱 힘과 도움을 얻고 있지만.
죽음이 올 때까지 글을 쓰는 일은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서 쓰는 거지만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으로, 좋은 쪽으로 미치길. 어떤 식으로든.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나 보다. 정신없이 글을 써 내려간 걸 보니 말이다. 정상을 눈앞에 둔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닥뜨렸고,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쓴 글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진정성 있고 묵직하게 내 마음을 두드렸다.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준비하고, 내가 살아온 삶을 점검하고, 내가 살아갈 삶을 점검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좋은 책은 나를 항상 일어서게 만든다. 오뚝이처럼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려도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죽음을 말하는 따뜻하고 애잔한 이 책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친 내 정신에 에너지를 충전시켰다. 또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 대신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절로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살아 있다면 나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들을 많이 했을 사람인데. 나는 아직 이곳에 남아있고 그는 떠났다. 할 수 있다면 나도 조금 더 가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미숙한 생각이지만.
죽음을 통해 팔딱거리는 삶을 보았다. 싱싱하고 신선하게 나에게 주어지는 내일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ㅣ책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962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