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Inside Wisdo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 Oct 23. 2018

성공이 아닌 성장 이야기

영화 <퍼스트맨>을 보고

주인공은 비행기 안에 혼자. 기체는 심하게 요동친다. 비행기는 원래 가려던 곳으로 가지 못하고 방황한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보려, 원래의 궤도로 진입하려 안간힘을 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은 주인공의 고난을 함께 한다. 그렇게 힘들고 두렵고 고독한 한 인간의 긴 삶 속으로 느닷없이 내던져진다. 




그렇게 영화가 처음에 경고했던 대로 그에게 시련이 이어진다. 조종 실수로 근신 중인 그에게 딸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시련이 닥쳐온다. 딸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느낌이 아직도 그의 손끝에 남아 있는데 그는 딸을 차가운 땅에 묻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순간을 그렇게 슬프게 다루지 않는다. 딸의 죽음은 갑자기 등장하는 장례식 장면을 통해 알 수 있고 우는 모습을 보이는 건 닐 뿐이다. 아무도 없는 자신의 서재로 들어와 커튼을 닫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닐. 닐은 그렇게 혼자다. 계속.




영화가 딸의 죽음을 떠들썩하게 다루지 않은 탓에 나는 그 사건을 그렇게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갑자기 변해버린 닐의 변화에 그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그저 당황하고 낯설어할 뿐이었다. 딸을 잃은 슬픔은 그의 아내 자넷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그녀는 새로 태어난 아이와 더불어 가정을 돌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닐은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처럼, 어딘가 구멍이 난 풍선처럼 불안정하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은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새로 들어간 나사에서 만난 직원들, 가족들과 정을 나누면서 우정을 쌓아가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또 갑자기 우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간 동료들로 인해 그는 다시 혼란에 휩싸인다. 그도 동료들처럼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도 점점 옅어지는 것 같은데 그는 멈추지 않는다. 가족들이 그를 걱정하고 그로 인해 불안해하는 걸 알면서도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왜. 그를 지켜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오히려 그를 위로해주려는 사람을 무시한 채 하늘의 달만 바라본다. 그것이 유일한 위로인 것처럼.




예기치 못한 희생과 우여곡절 끝에 달에 착륙할 아폴로 11호에 닐이 탑승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달을 밟은 사람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알았다. 그는 내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는걸. 어느새 나도, 주변 사람들도, 아내마저도 잠시 잊고 있었던 딸의 죽음에 계속 아파하고 있었다는걸. 그가 달에 도착해 첫 발을 내딛고 성큼성큼 걸어가 손에 꽉 쥐고 있던 것을 살며시 놓을 때 알았다. 그가 쥐고 있던 것이 죽은 딸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였다는 걸 보는 순간, 갑자기 눈 전체에 눈물이 차올랐다.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차올라 흘렀다.




인류가 최초로 달을 밟은 그 순간을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슬픔이었다. 그동안 그가 짊어지고 있었을 커다란 슬픔, 혼란이 한순간에 몰려와 나를 울렸다. 왜 나는 그걸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을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닌데. 전혀 아닌데. 누군가의 빈자리, 상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그 상처가 아물어도 얼마나 큰 흉터를 남기는지 알면서.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달 위에 인간이 올라섰지만 그만큼 위대한 일을 해냈지만 이미 떠나버린 딸을 되살릴 수는 없는 일. 그건 결코 불가능한 일. 엄청나게 위대하다고 하는 일을 해냈음에도 그 어쩌지 못할 슬픔, 무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흥분하고 있을 때 조용히 딸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슴에, 달에 묻고 있었을 닐. 그때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각자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함께 나누며 슬픔을 덜어내고, 어떤 이들은 오롯이 혼자 견딘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 모두 완벽하게 깔끔하게 슬픔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지는 않는다. 슬픔을 덜어내고 덜어내고 나눠주고 또 나눠줘도 나의 몫을 충분히 겪어내야 한다. 또는 혼자 이겨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슬퍼하는 모습을 애써 감추려 해도 늘 곁에 있는 사람까지 속일 수는 없으니까. 




닐은 후자였다. 어떻게든 혼자 견뎌보려는 사람. 비록 자신의 그런 방법이 아내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견디길 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달을 보면서. 우주 비행에 모든 관심을 쏟으려 애를 쓰면서. 어쩌면 입 밖으로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큰 슬픔은, 상처는 보기만 해도, 떠올리기만 해도 아프니까. 어쩌면 그는 동료들의 희생을 보면서 두렵기도 했겠지만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자신의 슬픔이 너무 커서.




결국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마치고 돌아온 닐은 아내 자넷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아직 검역 절차가 남아 있던 탓에. 그때 두 사람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다가 닿지 않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을 뿐이다. 그들의 눈엔 슬픔, 안도, 이해, 반가움 등 아주 복잡한 감정들이 가득 담겨있는 듯했다. 아이를 잃은 그러나 어떻게든 이겨내보려 노력 중이었던, 그러다 아주 큰 터널 하나를 통과해 낸 부모의 모습이었다.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한 , 영웅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아니고 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결국 사람을 보게 한다. 어떤 거대한 업적이 아니라 사람을. 그 업적을 받쳐 들고 있는 혹은 아예 그 밑에 묻혀버린 사람들. 닐도 그 사람들 중 하나다. 영웅이 아닌, 딸을 잃고, 그 슬픔으로 가족들을 잊고, 동료들을 잃은 사람. 그리고 결국 사람이 겪은 고독함을 우리도 함께 겪게 한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한 사람의 성장담이다. 커다란 슬픔, 자신의 일에서 느끼는 혼란 등을 느끼고 버티고 회의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 영화의 엔딩에서 닐이 아내를 바라보며 보여준 표정에서 그가 조금 성장했음을 나는 느꼈다. 어둡고 길었던 터널을 이제 막 나왔음을, 터널의 끝에서 자신을 기다려준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나는 보았다. 



내가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아마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이제야 그의 진정한 팬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었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