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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Oct 30. 2018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한 이의 책

나성인 -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을 읽고






클래식 음악은 그냥 나의 글쓰기 배경 음악일 뿐이었다. 누구의 음악인지도 모른 채 계속 틀어놓고 글을 쓰다가 글 쓰기가 끝이 나면 음악도 함께 끝이 났다. 당연히 기억에 남는 멜로디는 하나도 없었다. 클래식은 나에게 그 정도의 장르였다. 클래식 음악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등 수없이 들어본 이름들은 그저 이름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베토벤이 나에겐 가장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였다. 그의 곡 중에는 운명 교향곡, 황제, 월광 소나타 정도 그나마 제대로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멜로디 따로 제목 따로 알고 있는 곡들이었다. 베토벤을 떠올리면 헝클어진 머리와 '미치광이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함께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들어왔고 그에 대해 다시 알게 될 기회가 없었다.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을 읽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는 천재이지만 괴팍했던 귀머거리 작곡가로 그를 기억했을 것이고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볼 일도 그래서 그의 곡이 얼마나 개성 넘치고 재밌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무척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베토벤의 총 아홉 개의 교향곡을 중심으로 베토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고 있는데 그 정보의 종류나 양이 상당하다. 이것은 대충 이런 정보 저런 정보를 짜깁기해서 만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성향, 성격, 사생활, 신념 등등 다양한 방면의 정보가 재미와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시켜줬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베토벤은 결코 괴팍한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그는 멋진 신념을 가지고 예술로서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베토벤은 예술가를 일종의 선지자로 여겼다. 다시 말해 사회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정치적 자유를 정신적 차원에서나마 미리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베토벤은 과거의 음악가와 차별성을 지닌다. 이미 베토벤은 1793년 5월 23일 다음과 같은 짤막한 메모를 남긴 바 있다.

할 수 있는 한 선한 일을 하고
자유를 모든 것보다 사랑하고
왕 앞에 불려가서도 결코 진리를 부인하지 말자.




물론 그에게 괴팍하고 난폭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것은 알려진 대로 예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듣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히스테리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에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했지만 그녀는 끝내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걸로 추정되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마저도 베토벤은 자신의 딸로 여길 수가 없었다. 여인과 아이 모두 잃은 베토벤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그로 인해 외로움이 더욱 깊어졌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외로웠던 것이다. 그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고 자신의 아이를 만나고 싶었을 뿐이다. 베토벤이 이런 이유로 상처를 입고 음악을 멀리하고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베토벤도 그저 한 남자였던 것이다.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특히 외로움에 떨었던 사람. 얼마 전에 본 영화 <퍼스트맨>이 떠올랐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을 보는 게 아니라 외롭고 괴로운 인간 베토벤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가 조카를 아들로 삼고 싶어 자신의 제수에게서 아이를 빼앗았던 일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 그는 죽은 동생의 아들을 빼앗으려 아주 비겁한 일까지 저질렀다. 그렇게 뺏은 조카에게 음악을 강요했다. 결국 조카는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


문득 화려한 삶, 화려한 음악 뒤에 숨겨진 베토벤의 이런 이야기는 위인의 삶을 무조건 멋진 삶, 꼭 되어야만 하는 삶, 배워야 하는 삶으로 가르쳐왔던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이가 모두가 베토벤이 되기를, 스티브 잡스가 되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그렇게 옳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했다. 그들의 일에 대한 성공이 다른 잘못된 것들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다. 그들의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채워줄 수는 없다. 나는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 무조건 최고 일인자가 되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꾸준히 최대한 오래 간직하고 해나가는 삶을 살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를 너무 아프게 하지 않고 말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교향곡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무척 자세하고 친절하다. 그런데 나처럼 아예 클래식 생초보자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음악 용어, 클래식의 형식과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인 책을 읽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클래식을 어떤 식으로 듣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악기의 소리, 강약, 음악 전체의 빠르기, 진행 방향 등을 고려하면서 클래식을 들으면 그 맛을 더욱 깊게 느낄 수가 있다. 물론 나는 그게 좀 어려웠지만...... 그저 멍하니 듣는 게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고려했던 부분을 같이 유심히 듣다 보면 아, 이런 매력이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게 느껴질 때 약간의 쾌감이 있었다. 





먹구름이 지나간 하늘을 플루트가 반짝이는 상승 음형으로 수를 놓는다.
돌고 도는 클라리넷의 선율에 비올라와 첼로가 백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지속음을 깔아주자 다시 세계는 충만한 자연 - 곧 1악장의 세계 - 로 회귀한다.





한 곡씩 여유 있게 저자의 설명을 따라 곡을 듣다 보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기존엔 그럴 여유가 없었는데. 베토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영상을 떠올렸다. 이 곡에 어울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내가 감독이 되어 만들어냈다. 그 음악의 세계에서 내가 만든 세상을 던져 놓고 즐겼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종종 그런 시간을 가져야겠다 다짐은 했는데 사실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은 작가의 정성과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책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 만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이 책이 품고 있었다. 나는 과연 무엇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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