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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Nov 06. 2018

나는 이제야 퀸의 팬이 되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보는 풍경, 매일 겪는 일들은 뭔가 또렷하지가 않다. 그렇게 보고 듣는데도. 막상 떠올리려고 하면 흐릿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세히 들어보지 않으면 그렇다.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퀸’이라는 이름과 그들의 노래는 흔히 들어온, 저절로 귀에 각인된 것들이었다. 멜로디는 흥얼거리면서 제목을 모르는 노래, 제목만 아는 노래, 앞부분만 아는 노래, 그들의 노래인 줄 몰랐던 노래 등등 내 인생에 무의식적으로 깔려온 음악들이었다. 어떤 곡은 그저 광고 음악으로만 알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노래, 아는 그룹이라고 생각했다. 퀸 모르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퀸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들의 팬이 되었다는 것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덕분에 말이다. 




어떤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하지만 손님과 점원 사이이므로 자주 본다. 그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그 남자가 말을 건다. “물 한잔 드릴까요?” 나는 대답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된다. 좀 더 가깝게 마주 보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아는 사이가 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모르던 때의 그가 아니다. 



그렇게 알면서 애정이 생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림도, 문학도. 그래서 난 되도록이면 알려고 한다. 그것이 내게 주는 감동이 훨씬 크다. 퀸의 음악도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나에게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전에 내가 알던 음악이 아니었다. 그저 라디오에서, 티브이 속 광고에서 흘려듣던 그 음악이 아니었다. We are the Champions는 그저 응원곡으로 알던 그 곡이 아니었다. 나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넌 챔피언이야. 우리 모두 챔피언이야." 눈물이 났다. 처음으로 퀸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꼈고 저절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프레디 머큐리의 영화 같은 삶 때문이 아니다. 그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어서도, 그가 에이즈에 걸려 일찍 죽음을 맞이해서도 아니다. 퀸의 음악을 그들의 명곡을 이제야 가만히,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여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큰 스크린으로 그들의 표정을 보고 큰 음향으로 자세히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알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아보기 힘들다. 당연히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꼭 뒷이야기나 정보 같은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을 말한다. 제대로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물 한 모금에 삼켜버리면 그게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자세히 몰입할 때 진짜 알게 되는 것이다. 



퀸의 음악을 2시간 동안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에 대해 그렇게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온전히 퀸에 집중한다. 그들의 음악에 집중하고 프레디 머큐리의 동작, 표정에 집중한다. 그렇게 하나에 2시간이라는 시간을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전에 몰랐던 수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좀처럼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그렇게 점점 감성이 메말라간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럴 정성이 없었을 뿐.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늘 곁에 있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가만히 앉아 깊이 있는 대화들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표정을 자주 짓는지, 슬픈 표정인지, 기쁜 표정인지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오래 얘기할 시간을 갖게 된다면 놀랄 것이다. 이런 사람이었나? 혹은 이렇게 힘들었다니 몰랐네 하면서. 이런 시간들로 신뢰와 애정이 쌓여가는 것인데 말이다. 




이제야,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나는 퀸의 팬이 되었다. We are the Champions를 통해 위로받았다. 힘을 얻었다. 아주 소중한 뮤지션 한 팀을 얻었다. 며칠 동안 그들의 노래만 듣고 있다. 아마 나 같은 사람들 지금 여럿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두 시간의 힘 아닐까. 오롯이 퀸에게 집중한 두 시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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