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나의 친애하는 적>을 읽고
나는 케이스 부자다. 아이폰, 아이패드, 노트북, 심지어 텀블러까지 모두 옷을 입고 있다. 대부분 좋아하는 물건들은 그렇게 보호복을 입고 있고, 엉덩이에 폭신한 깔개를 깔고 있다. 책도 옷을 입는다. 북 커버만 10개 정도 되려나. 책은 절대 접거나 구기지 않고 책에 절대 낙서를 하거나 밑줄을 긋지 않는다. 포스트잇이나 마크를 이용한다.
위의 모든 것들은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 주지도 않는다. 그들이 나의 물건을 나처럼 소중하게 다루지 못할 테니까. 책은 종종 빌려주기도 한다. 그건 조금 달라진 부분이다.
반면에 별로 관심 없는 물건이나 애정이 없는 물건은 미련 없이 잘 버리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물건이 거의 없다는 게 반전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정리를 굉장히 잘하거나 깔끔한 사람은 아니다. 어릴 때 엄마 잔소리의 대부분이 방 청소 좀 하라는 것일 정도로 정리정돈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깔끔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들어서 전보다 깔끔을 떠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낯선 모습이었다.
잡지에 나올 만큼, 유명 SNS 유저들만큼 집을 잘 가꾸지는 못하지만 늘 깔끔한 상태로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천성이 게으른지라 마음만큼 잘되지는 않았다. 그 간격만큼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깔끔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과 게으른 나의 현실의 간격만큼.
나의 성향이 조금 바뀐 것 같다. 여전히 게으르지만 최소한으로 해야 할 일들에 힘을 분배한다. 집이 작아서 다행이었다. 혼자 힘으로 청소할 수 있으니까, 별일 없으면 매일 청소기를 밀고 후딱 정리할 수 있으니까. 예전엔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매일매일 방을 청소하고 집을 정리한다는 것은. 하지만 이제 정리되지 않은 집에서는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나는 이런 변화가 누구에게나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하나의 강박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에겐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마치 스님이 된 것처럼 이것도 하나의 수행이라고 여겼다. 귀찮아도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중 하나라고. 누군가는 수행이라고 말하기엔 거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머리카락이 온 집안에 널브러져 있어도 그 위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왜 나는 각종 물건에 옷을 입히고 전보다 깔끔한 사람이 되었을까. 왜 그렇게 되어가고 있을까. 왜 그렇게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일까. 이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가끔 스치듯 떠오르는 의문들에 답을 달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에게서 그 대답을 들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처음 상태로 되돌려놓는 일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언제든지 눈앞의 이것을 본래의 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았다.
허지웅 <나의 친애하는 적> 중에서
모든 것이 이 이유 하나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장을 읽자마자 알아보았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이거였구나. 나는 처음 상태에 매달리는 사람이었다. 맞다. 내가 좋아하는 상태 그대로 유지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었다. 관계도, 일도, 좋아하는 것도, 물건도. 하지만 애를 써도 잘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고 그나마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청소와 정리였다. 그랬다.
이 문장 하나에 이 글을 쓴 사람, 허지웅에 대한 나의 이유 없던 나쁜 선입견이 완전히 벗겨져버렸다. 허무했다. 그냥 나 혼자 그가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됐는지, 저런 생각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작가와의 진정한 소통이었다. 나만의 허지웅 작가와의 소통.
이유야 어찌 됐든 좀 더 정돈된 삶을 추구하는 중이다. 지금보다 정리와 청소도 더 열심히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과거를 붙잡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지금 통과 중인 현재에 집중하고 새로 만들어갈 무언가에 에너지를 나눠주길 바란다.
이 와중에 좀처럼 깔끔해지지 않는 화장실이 떠오른다. 그것부터 좀 해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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