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중요한 건 통역 내용
통대 동기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만장일치로 의견이 통한 부분이 있었다.
통역사의 발음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통역사는 원어민 발음으로 통역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동기와 동시통역을 할 때의 일이다.
우린 둘 다 모국어가 한국어.
오전엔 한중, 오후엔 중한 동시통역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작 전에는 당연히 B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오전 한중 통역 시간만 잘 넘기면 오후의 중한 통역은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사히 오전 타임을 보내고, 편한 마음으로 맞이한 오후 중한 통역 타임.
웬걸, 연사가 하고 있는 말이 중국어인 건 알겠는데 말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
단어와 단어는 이해가 되는데 문장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의미 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으니 통역이 중간중간 막혔다.
다행히 파트너가 있으니, 내가 잘 못 들은 부분을 파트너가 도와주어 어찌어찌 통역을 마쳤다.
통역이 끝나고 진이 쭉 빠진 상태에서 둘이 한 생각.
“복병은 한중이 아니라 중한이구나.”
내가 한중 통역에 더 긴장했던 이유는,
통역사가 중국어 원어민이 아닌 것을 알아차리겠구나, 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통역사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언어 다 네이티브 발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중한 통역이 끝나고 나니 비로소 깨닫는다.
“통역에서 중요한 건 발음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구나.”
발음은 통역사에게 요구되는(통역사가 원어민이 아님을 알아차리더라도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는) 최소한의 수준을 만족하면 되는 것이지만,
정확한 이해는 최저 수준을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수준을 만족해야 한다.
통역사의 외국어 발음이 최소한의 수준을 만족하는지 여부는 통대 입시 시험부터 통대 졸업 시험까지 통대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어느 정도 평가를 받는다.
발음이 너무 형편없어서 통역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애초에 통대 수업을 다 마칠 수도 없다.
통대 시험이 아니더라도, 몇 번의 실전 통역을 통해 고객의 만족도와 컴플레인 유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발음은 너무 좋은데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통역사와 발음은 완벽하지 않지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통역사,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답이 자명하다.
외국어 실력도 좋은데 발음도 좋다?
그럼 당연히 금상첨화다.
기억해야 할 것은,
통역사의 발음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의 ‘금(비단)’이 아니라 ‘화(꽃)’라는 것이다.
있으면 좋지만 필수는 아닌 것.
기본이 되는 비단이 없는데, 꽃을 얹을 수는 없다.
특히 국내파 출신이라 외국어 발음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발음을 무조건 원어민처럼 들리게 빨리 말하는 연습을 할 게 아니라 정확한 발음을 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외국어 실력 자체, 정확히 듣고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헷갈릴 때는 기본에 충실하면 되는 것 같다.
외국인 청자 입장에서 통역사의 외국어 발음이 원어민 같으면 “한국인 통역사구나”라고 생각하지만,
통역사의 외국어 발음은 원어민 수준이지만 통역이 엉망이면 “통역사 맞아?”하고 역할 자체를 의심한다.
통역사는 모국어가 뭔지 헷갈릴 정도로 원어민 발음을 구사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 흐르듯 소통이 자유로워지도록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