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의 핵심은 역시 화자에게 집중하기
즐거운 추억과 성장의 한 걸음으로 남은 지난 달의 해외출장 동시통역.
이번 해외출장지는 연대(烟台, 옌타이)였다.
비자를 위해 올해 충무로만 다섯 번 오갔는데, 이제 복수 비자가 생겼으니 적어도 1년은 갈 일이 없겠지?
통역은 의뢰를 받을 땐 순간 너무 신나다가 점점 긴장이 몰려오는 법인데, 이번엔 좀 달랐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의 대본과 발표자 대부분의 대본을 사전에 전달 받았다.
물론 몇몇, 현장에서 시상하는 순서의 수상자는 미리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수상 소감은 생 동시를 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무난한 동시통역이다.
행사 이틀 전부터 대본과 스크립트를 받아 사전에 확인하고 문장마다 번역도 해놓았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니 사실 여느 때보다 긴장감이 덜했다.
행사 당일 걱정한 것이라고는, 당일 새벽에 눈이 많이 와서 늦지는 않을까 정도?
출발이 늦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워낙 아침 이른 시간 비행기라 행사 시작까지는 여유로웠다.
무사히 도착해 호텔에 짐 놓고 옷 갈아입은 뒤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 시작 후 순조롭게 통역을 진행하고 있는데 두세 번 정도 멈칫한 때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사회자보다 통역을 미리 해버린 것.
정확히 말하면 사회자보다 통역이 먼저 끝난 것이었다.
아무리 대본이 있어도 계속해서 사회자가 어느 부분을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미리 준비한 것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화자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대본에만 집중한 것이다.
몇 번 이러고 나니 ‘아, 이제는 안 되겠다. 무조건 생 동시 할 때처럼 일단 듣고 시작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동시통역할 때처럼 2, 3초 들은 후에 시작하고 하는 중간에도 수시로 진도를 확인했다.
이게 당연한 거였는데, 대본이 있다고 처음에는 소홀했다.
행사가 진행될수록 예외 상황이 중간 중간 발생하다 보니 진행 시간이 딜레이되고, 자연히 사회자는 기존 대본에 있는 대사 중 일부는 스킵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생겼다.
그 전에 내가 각성했기에 다행이지, 계속 대본 보고 줄줄 읽을 생각이었다면 분명 화자와 다른 통역이 송출됐을 것이다.
자료가 100% 준비된다고 자료에만 의존하면 통역이 완벽히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자가 완전히 대본대로 하더라도 부드럽게 통역이 나오려면 일단 화자의 말을 듣고 시작해야 하고 시종일관 화자와 한 팀인 것처럼 박자를 맞춰야 한다.
또 한 번 깨닫고 성장했던 이번 통역.
다음 달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