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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r 24. 2021

불혹의 사춘기

"어떤 X인 것 같애?!?!?!"

나는 사춘기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진학했으며

비교적 쉽게 취업했다.  

사춘기를 겪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앓는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굴곡은 뒤늦게 찾아왔고 그 시간은 영겁과 같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회사생활은 힘들었고

워킹맘 생활은 죽을 것 같았다.  

삶에 대한 고민은커녕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바쁘게 지냈다.   


나이 40이 되어 이제야 비로소 '나'라는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런 삶을 위해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노트를 펴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나를 표현한답시고 단어 하나를 적어놓고는 이게 내 단어인지 또 고민한다.  


요즘 잘 나가는 여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영어 랩과 욕으로 가득 찬 노래인데

뜬금없게도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내가 어떤 X인 것 같아?!

나는 타고난 계집애

만족하지 않아, 욕심쟁이


여가수의 자신감이 부러웠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꼴 보기 싫었으며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

그리고 앞으로 노력하면 자신감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다.

그리는 동안은 보잘것없던 내 삶을 잊을 수 있고

완성된 그림을 보노라면 결핍된 자신감이 완성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의, 담배 피우는 예쁜 여자를 그리면

내가 마치 그 여자가 되어서 세상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불완전한 친정

말할 것도 없는 시댁

남편의 체면

아이 셋 육아

회사에서의 내 입지 등

그동안 내 어깨에 얹혀있던 것들은 잠시 내려놓고

당분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보고 싶다.  


세상에 외치리.  

내가 어떤 X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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