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두 딸을 키우던 2008년 봄,
벚꽃이 피는 화사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돈 걱정으로 우울한 하루하루를 채웠다.
남편과 둘이서 벌어도 아이들 둘을 키우기엔 바듯한 살림이었다.
아파트 대출금, 자동차 할부금, 아이들 어린이집 비용, 영어 수업비, (국가지원이 없던 그때는 두 아이들 어린이집 비용 및 특별활동비로 100만 원 가까이가 들었다.)
생활비, 보험료, 식비 등 매달 마이너스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걱정에 걱정을 거듭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나 하고 며칠 느끼던 차에 아침이면 속이 울렁거렸다.
아침이면 밀려오는 구토증상에 혹시나 임신테스트를 하니 선명한 두줄이 보였다.
아이 셋을 가졌다고 월급이 오를 리 없고 뻔한 형편에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난다고 하면
힘들어질게 눈앞에 그려졌다. 지금까지 너무나 행복하게 바라보았던
선홍색 두 줄이 너무나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는데 대한 미안함,
한숨과 걱정, 돈 때문에 남편과 다툼으로 채워질 날들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두 명을 키우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여기다 셋째라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매일을 보낼수록 암담한 미래가 그려졌다. 돈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 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아이에게 어두운 미래를 보이기 싫었다.
쪼르르 남편에게 달려가서 테스트기를 보여주었을 건데 보여주지도 못하고 고민만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임신 사실을 밝혔는데 남편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입덧 있을 때 챙겨 먹으라며 냉동실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채워 놓았다.
무덤덤하지만 속정이 깊은 남편의 표현 방식이었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임신에 대한 축복으로 행복해야 할 날들이 고민의 날들로 채워졌다.
대단한 결심을 해야 했다. 신앙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옳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힘든 날들에 대한 걱정이 감사를 눌러 이겨 버렸다.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답이었다. 나에게는.
어느 날 퇴근을 하고 그대로 안방에 앉아 침대 모서리에 기댄 채 울었다.
우울한 생각은 더 깊은 우울과 슬픔으로 나를 휘감았다.
뱃속의 아이는 이미 태어나지 못하는 존재라 여겼는지 태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매일을 힘겨워하며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창 바깥이 어두워져 있었다.
나만 고민하는 상황이 힘겨웠다. 남편에게 말해야 했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반기러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굳은 채 앉아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온 남편이 우두커니 울며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뭐 해?”라고 덤덤하게 물었다.
“불 켠다?”
불 켜지 말고 내 앞에 좀 앉아 보라는 내 말에 남편이 화장대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나, 도저히 못하겠어. 이 아이 낳지 못할 거 같아.”
“빨리 날짜 정해서 병원 가면 안 될까?”
“나, 병원에 갈 거야. 이러다가 망해.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밀려오는 죄책감을 숨기고 말을 꺼냈다.
중간에 말을 멈추면 더 이상 말할 수 없을까 봐 남편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연거푸 말을 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남편은
평소의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특유 강한 말투보다 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딴생각하지 말고 건강하게 낳을 생각이나 해.
그리고 앞으로 그런 말 영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마라.
돈은 내가 더 벌테니.”
도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섬광이 번쩍했다.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의 모습이
석고 조각상이 깨지듯 눈앞에서 바사삭 깨어졌다.
남편이 나를 달래듯 ‘왜 그러냐, 그렇게 힘드냐, 그래도 우리 잘 키워보자 ‘라고 했다면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하며 내 뜻을 관철시켰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고민 없이, 내가 말을 끝 마치자마자 돌아온 답에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남편의 마음은 확고하다는 것, 그게 정답이었다.
나는 잘못된 해답을 들고 풀 수 없는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던져 놓은 남편은 나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그대로 부엌으로 가
아이들과 나의 저녁을 차려 주었고 더 이상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비밀에 부쳐졌던 나의 셋째 임신 사실은 축복이 되어 돌아왔다.
어르신들이 하시던 ‘태어난 생명은 자기 밥그릇을 다 가지고 태어난다.
낳아놓으면 어떻게든 큰다.’라는 말을 큰 위안 삼았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해 낼 수 있을 거야.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소중한 생명이 왔는데 이럴 순 없지.
그동안의 죄스런 마음을 더 정성된 태교로 갚아 나가며 소중한 셋째를 맞이했다.
사랑스러운 딸 둘에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은메달이었던 엄마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딸 둘은 은메달, 딸 둘에 아들 하나는 금메달이라고 주변에서 축하해 주었다.
나쁜 마음을 갖고 있던 아내를 단호한 말로 정신 차리게 한 남편에게 준 축복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