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필수 능력 빠르고 정확하게!
그런 와중에 한 동기로부터 '프리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프리뷰는 방송이 나가기 전 가장 원초적인 가장 날것 상태의 영상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을 말하는데, 이 프리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리뷰를 잘하게 되면 어떻게든 방송 일에 연줄이 조금이라도 닿을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프리뷰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한글 기본 타수는 900-1000타 정도가 나왔고, 영타도 800-900 정도로 나올 때였으니 뭐든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프리뷰 구하는 곳을 알아봤는데, 초짜인 나를 써주는 곳은 생각보다 없었다.
프리뷰는 각 방송사의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그 형식이 다르다. 머리글을 상세하게 적는 곳이 있는가 하면 깔끔하게 보기 편하게 제목만 적는 곳도 있고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그 프로그램의 메인작가가 봤을 때 가장 가독성 좋게 정리해서 정리하는 것이 좋다.(최종적으로 영상을 보며 편집구성안을 쓰고 대본을 쓰는 역할을 하기 때문) 프리뷰를 구하는 방송작가의 대부분은 대체로 그 팀의 막내작가다. 어떤 곳에서는 취재작가로, 어떤 곳에선 막내작가로 불리는 이들이 본인과 함께 프리뷰 해줄 팀원(?)을 구하는 일. 그들을 '프리뷰어'라고 불렀다. 프리뷰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꼼꼼하게 시간 맞춰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곳은 팀별로 움직여서 프리뷰를 전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팩트는 처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내 기준에서 이야기 해보자면 프리뷰에 자주 쓰이는 용어를 알려줘야 하는... 처음 하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 지도 의문이므로 위험을 감수하고 잘 안 하려는 편이다. (이건 나도 방송작가가 되고 나서는 그렇게 했다. 처음인 분에게 맡겼다가 다시 작업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에) 빠르게 작업을 끝내야 하는데 마냥 기다려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펑크 내버리고 잠수 타거나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높다는 것. 그래서 방송작가들은 대부분 리스트를 갖고 있는데, 이 리스트에는 잘하고 꼼꼼하게 하는 사람들이 체크되어있어서 그 사람들 위주로 섭외를 하곤 한다. 아, 물론 이 리스트엔 블랙 처리된 인물들도 있다. 자주 펑크내고 프리뷰 퀄리티가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다들 각자의 리스트가 존재한다. 나도 당시엔 갖고 있어서 항상 잘하는 사람들 위주로 섭외했는데 그들과 지금도 연락한다.
이 프리뷰 작업은 보통 방송 기획에서 촬영 진행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내버려 두면 수많은 테이프들이 쌓이기 때문에 바로바로 쳐내야만 한다. 지금은 파일로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내가 처음 방송 프리뷰를 시작하던 당시엔 커다란 장비에 컨버팅 된 테이프를 넣고 기계를 조작하며 돌려보고 재생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진 것이 미니 데크로 6mm 테이프를 넣고 프리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뒤에는 파일로 받아서 프리뷰를 했지만 이 파일로 받기까지는 수많은 조연출들, 아니 FD들의 눈물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방송작가를 하던 당시에는 파일보다는 데크 방에 들어가 아예 짐을 풀어놓고 테이프를 쌓아두곤 밤새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그 밤샘의 기억들은 벌써 10년도 더 되었는데 생생하게 기억난다. 같이 고생했던 조연출과는 지금도 가끔 만나곤 하는데, 우린 만나면 그날 그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만큼 힘들고 힘들었던... 프리뷰의 나날들. 하지만 이 프리뷰는 정말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집을 지을 때 탄탄하게 집터를 닦는 것처럼 프리뷰 역시 꼼꼼하게 잘 기록된 것이어야 추후 방송 제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편집할 때도, 시사를 마치고 수정해야 할 때도 프리뷰를 보며 영상을 재편집하기도 하니까.)
다시 돌아와서 방송사마다 다르고 프로그램마다 성격이 다 달라서 프리뷰를 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했다. 주로 휴먼다큐를 주로 했었는데, 당시 구인구직에 올라온 프리뷰 구한다는 글을 보고 열심히 냈던 게 기억난다. 처음 내게 손길을 내밀어준 프로그램은 국제시사프로그램이었다. 이건 아카데미 동기가 방송 프리뷰를 시작하면서 추천해줬는데, 처음 하기에 꽤 편한 편이라고 했다. (직접 해보니 절대 편한 게 아니었다...) 처음 내가 했던 프리뷰는 이미 프리뷰가 되어있는 곳에 번역을 해주는 외국인과 앉아서 그 번역한 내용을 다시 옮겨 적는 일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동기가 본인이 하기 버거워서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해외 프로그램의 프리뷰를 하면 좋은 점은 영상의 스케치와 인터뷰(번역이 필요한 부분)가 적절히 들어가 구분하기 좋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인터뷰가 아닌 인물들의 대화 내용을 전부 번역해야 할 때 체크를 더 꼼꼼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 동기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였는데, 그 속도에 비해 프리뷰를 꼼꼼하게 하지 못한다고 지적을 받아 추가로 투입된 것이었다. 빠르게 넘겨주는 프리뷰 파일을 받아서 외국인과 같이 번역한 내용을 옮겨 적기를 하다 보니 중간중간 비어 보이는 곳은 다시 체크해주며 프리뷰를 완성해갔다. 그렇게 몇 번 하고 나니 어느 순간 프리뷰 속도도 빨라지고 꼼꼼하게 해서 주자 다른 팀에서도 연락을 주는 일이 많이 생겼다. 프리뷰를 추천해준 동기는 아카데미 졸업도 하기 전에 외주제작사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지만 금방 작가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그 프리뷰를 시작으로 여러 방송국을 다니며 프리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시간별로 바뀌는 장소, 풍경, 인물... 그들이 하는 행동과 모습, 나누는 대화와 카메라 앵글의 각도 등을 상세하게 적으며 꼼꼼하고 자세하게 프리뷰를 했다. 그리고 프리뷰 전용 메일을 만들어서 그 메일로 소통을 주로 했다. 방송사별로 프로그램별로 카테고리를 나눠서 파일을 저장해 두고 방송작가가 되기 전까지 프리뷰를 전문으로 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다니면서 다닌 아카데미도 졸업을 했고 졸업하고 한 달 정도 프리뷰에 몰두하다가 드디어 나도 방송작가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프리뷰는 방송작가가 되고 나서도 주야장천 해야 하는 필수 업무 중 하나였고, 프리뷰를 시작하면 원래 하던 기본 업무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라 더 많이 힘들었다. 밤샘도 해야 했고, 메인작가의 책상 위에 깔끔하게 라벨링 해둔 상태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한 적도 있다. 주야장천 프리뷰에만 올인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아마 본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장기간 촬영했을 때 자주 그랬다.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팀이 6개여서 서로 다른 아이템으로 일을 했지만, 무릎 튀어나온 운동복에 떡진 머리, 목에 항상 걸고 다니던 수건과 양치도구는 우리들의 필수품이었다. 어쨌든, 그만큼 프리뷰는 방송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작업이기에 막내작가의 필연적인 덕목이기도 했다.
프리뷰를 잘한다는 것은 곧 능력이 좋다는 뜻이기도 했는데, 프리뷰는 방송을 하기 전 모든 촬영본을 다 보고 어떤 내용이 어떻게 담겨있는지 어느 테이프에 혹은 어느 파일에 들어있는지 알아야 방송 편집하면서 필요한 장면을 넣고 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걸 좀 더 보기 편하고 가독성 좋게 하는 것 역시 능력이 있냐 없냐를 판가름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막내작가들은 프리뷰 기간에는 꼼짝없이 촬영할 때마다 모든 것을 다 끝내야 했다. 지금은... 프리뷰를 아예 맡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라떼는 어투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방송작가이던 시절엔 다 해야 했다. 모든 촬영본에 들어있는 것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어도 프리뷰어보다 더 많이 프리뷰를 하라고 혼내던 선배 작가들도 있었다.
내가 했던 교양 프로그램의 프리뷰는 크게 휴먼다큐, 동물다큐 위주였다. 간간히 예능프로그램도 했지만 그건 더 힘들었...(편집본을 다시 프리뷰 하라고 해서 멘붕이 왔던 기억이 난다.) 휴먼다큐는 인물의 표정과 말투, 서로 나누는 대화가 좀 더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에 대화하는 것에 집중을 많이 했었고 동물 다큐는... 생각보다 꽤 어려운 편이다. 동물이 말을 하지 않으니... 초단위로 보면서 달라지는 모습에 굉장히 꼼꼼하게 정리해야 한다. 스튜디오 녹화본 프리뷰는 어떻고...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프리뷰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사투리를 쓰시는 어르신들 인터뷰일 것이다. (이것에 대한 에피소드도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어쨌든 프로그램마다 다 다른 프리뷰 방식과 형식이라서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통 프리뷰는 타임코드를 적고, 그 씬의 내용을 적는 동시에 카메라 워킹을 기록해야한다. 거기에 주변인들의 대화가 들린다면 구분해서 넣어줘야하고, 인터뷰라면 10초 간격으로 끊어서 해주는 것을 선호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경우는 스케치는 실시간으로 했고 인터뷰는 10초 간격으로 항상 끊어서 진행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프리뷰의 경험은 막내작가에서 입봉해 서브작가가 되었을 때, 그 이상으로 올라갔을 때도 도움을 주었다.
힘들었지만 힘든만큼 컷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필요한 컷은 무엇이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어떤 내레이션엔 어떤 장면이 꼭 들어가야하는지 등등에 대한 관점이 확실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서브작가든 메인작가가 되더라도 영상은 결국 전부 봐야한다. 그래야만 편집구성안을 쓸 수 있... 다는 것이 팩트. 프리뷰에 익숙해질 때쯤, 실시간 스케치가 가능하고 한 테이프당 비교적 빠른 시간내 정확하고 꼼꼼하게 끊어서 할 수 있을 때쯤 되니 아카데미 수료식이 성큼 다가왔고, 대학교 졸업시즌이 다가왔다.
다만 프리뷰를 할 때는 그 프로그램의 특성에 맞게 따르는 것이 맞고, 약속한 시간 내 해주는 것. 잠수 타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도 프리뷰 하느라 고생하는 방송작가들이여! 파이팅!!
* 프리뷰 형식도 다르고 워드나 한글파일 중에서 하기도 한다. 그리고 프리뷰 가격도 다 다르다. 보통 타임코드와 스케치 내용, 카메라 워킹 등을 적어두고 인터뷰는 10초 간격으로 끊어서 하는 편이 보기가 좋다. 장당 받기도 하고, 시간으로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리뷰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조만간 다시 풀 예정!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아기자기한 것을 사랑하는 핑크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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