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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Mar 21. 2022

코로나 확진받기 이렇게 힘든 일인가

코로나 확진 이후 칩거 2주 차에 접어들며



나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 것 같았던 이 일은 현재까지도 나를 고립시키고 있다. 육아하면서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진 기분이었는데, 여기에 코로나 확진자라니. 하지만 이마저도 아주 어렵게 양성 판정을 받고 고립되던 시점에 더 고립돼 버린 상태가 됐다. 우리 가족이 확진이 되기까지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 가족에서 처음 코로나가 걸린 사람은 친정아빠였다. 아빠는 가게와 집만 거의 오가시는 편이라 설마 했는데, 생각해보면 가장 위험한 직업군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남성복을 주로 하는 옷가게를 운영 중이신데, 아빠는 늘 아침에 일찍 나가 첫 개시를 하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사입하는 역할을 엄마는 직접 판매와 매대 정리, 고객 응대를 주로 한다. 코시국에 낯선 이들과 자주 만나는 직업을 가진 부모님이 안 걸리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인데, 나는 그걸 간과했다. 언제나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아빠는 단순 감기라고 생각하셨던 듯하다. 으레 날이 쌀쌀해지면 걸리곤 하던 감기와 비슷했고, 목이 따끔거리고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이었지만 '설마 코로나겠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빠의 증상이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을 무렵 그 사달이 났다.


우리 18개월 아기인 아들이 할아버지를 무척 따른다는 것을. 할아버지의 감기 기운(코로나 전조 증상)이 뭔지 알 수 없는 아들은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할아버지~ 할아버지하고 웃었다. 저녁을 같이 먹고 집에 돌아왔고 그 이후로도 별다른 일 없이 아들은 밥을 잘 먹었고, 잘 놀았고 잘 웃었다. 그리고 조금씩 미열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내 사그라들어 괜찮은 줄 알았다. 친정에 다녀온 후 딱 3일 뒤, 그러니까 일요일 밤 아들은 39도 가까이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안 왔는데, 살짝 선잠 든 내 손에 뜨거운 것이 만져졌다. 너무 뜨거워 다시 눈이 확 뜨였는데, 아들이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보통 한밤중에 38도 이상의 고열이 나기 시작하면, 비상사태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마음속 빨간 등이 켜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친정 다녀오고 주말 내내 잘 놀았는데? 그럼... 혹시? 온도계를 계속 체크하고 아들 상태를 조금 더 보다가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놀란 남편은 아들의 뜨거워진 몸을 체크하고 해열제부터 먹이자고 했다. 비상약으로 미리 사뒀던 해열제를 꺼내 잠든 아들 입에 넣어주자 조금씩 삼키고 다시 잠들었다. 정말 다행인 건 이때 바로 먹여서 열이 내려갔다는 거. 열이 내리지 않았다면 응급처치를 해야겠다 싶어 준비했는데 평온하게 잠든 아들을 보며 밤을 꼴딱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남편과 함께 아들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 일 수 있으니 무작정 소아과를 가기보다는 신속항원검사를 해주는 소아과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 있어 남편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일어나 향했다. 이른 오전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북새통이었다. 거의 대부분 환자는 아기들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신속항원검사를 하러 순서를 기다리고 마스크를 한 상태로 기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코로나... 무섭긴 했지만 이렇게 우리에게 벌어졌을 줄이야. 기침하는 사람들을 피해 접수를 하고 나니 대기 인원만 40명.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남편과 차로 내려갔다. 뜨끈뜨끈한 열을 뿜어내며 안긴 아들을 바라보며 괜스레 이 고생을 야기한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밥도 못 먹고 나온 상황이라 남편과 나의 아침, 커피를 사서 다시 차로 돌아왔다. 병원 근처에 있던 김밥집에서 산 김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코로나가 아니기를 바랐다. 그냥... 으레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 감기 같은 것이길 그냥 쉬이 넘어가는 것이기를 바라며. 김밥을 쑤셔 넣다시피 먹어 치우고 다시 병원으로 올라가 또 30분을 넘게 기다리고 드디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비닐로 둘러쳐진 진료실 안에서 남편과 나, 아기 모두 차례대로 콧구멍을 내줬다. 푹푹 찔러 쑤셔대는 바람에 짜증이 났지만, 빨리 음성이길 바라며 질끈 감았다. 아들은 너무 놀라 울었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3월 14일부터는 신속항원검사만으로도 양성 판정을 받으면 확진이 되는 걸로 바뀌었다. 밤쭈는... 우리 아들은 그러니까 '양성'이 나왔다. 남편과 나는 '음성'이었다.


아들은 자택치료 시작이고 그 말인즉슨 우리는 모두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스크 없이 맨날 얼굴도 만지작, 뽀뽀도 해주고 안아주는 스킨십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집에서까지 마스크를 껴야 한다니. 무엇보다 이 작고 소중한 아들이... 코로나 확진자라니. 코로나 조심하세요~ 했던 게 엊그제였고 늘 우리는 그 안에서 누구보다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오만이었다. 현재도 어마어마한 숫자로 증가하는 확진자 수를 보면 어쩌면 이젠 당연한 순서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열 펄펄 끓은 아들을 안고 처방약을 받아 들고 집에 오는 동안, 나는 그토록 아빠가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나은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들이 아파야 하는 걸까. 아빠도 몸이 안 좋으시면 먼저 검사부터 받으셨어야지... 하는 생각.


그렇게 아들과 가슴 아픈 자가격리가 시작됐다. 다행인 건 아기들은 보통 2일-3일 사이로 절정으로 앓다가 금방 열이 떨어지고 제 몸으로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2일이 고비라 정신 바짝 차리라고 이미 코로나를 앓고 회복한 조동 멤버가 충고했다. 걱정이 많았지만 아들은 그 말대로 첫날과 둘째 날 열이 절정으로 오르더니 이내 회복했다. 3일부터는 열은 아예 떨어졌고, 목소리만 조금 쉬어있었다. 그것도 약을 잘 챙겨 먹고 했더니 4일 차에는 이미 목소리도 거의 회복했고 날아다녔다. 기침을 하긴 했지만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고 그것도 이내 약을 꾸준히 먹이니 없어졌다. 지옥 같았던 2일이었고, 남편과 나는 아들과 입원실도 알아보고 있었다. 혹시나 열이 더 많이 올라서 경련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제대로 된 의료 케어를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생각보다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고 연락도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 코로나 확진될 경우에는 반드시 24시간 응급실, 비대면 진료 가능한 병원, 대면진료가 가능한 병원 등을 리스트업 해서 갖고 있는 것이 좋다. 닥터나우 등의 어플로도 이용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닥터나우로 병원, 약국 등 필요한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확진 판정을 받으면 보건소에서 문자를 주는데, 24시간 코로나 재택치료 전담반이 있어서 연락처 등을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입원하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예전에 아들이 100일 전에 병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끔찍하게도 싫어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좁고 불편한 침대에 누워 숨을 겨우 쉬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정. 병원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던 아들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 다시 생각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러니까, 입원은 아주 나중에 차선책이었다. 열이 잡히지 않고 계속 끓어오르면 민간치료법이든 뭐든 해서라도 내렸을 텐데, 다행히도 아들은 해열제가 잘 맞는 편이었다. 해열제를 먹이면 39도에서 37도 정도까지 내려와 줬고, 잘 놀고 잘 먹는 편이었으니까.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이 지나고... 아들이 기력을 회복한 3일 차에 남편이 갑자기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예상은 빗겨나가질 않았다. 남편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고 확진자가 됐다. 친정아빠에서 18개월 아기인 울 아들로 다시 남편으로... 그야말로 릴레이 확진이었다. 최악인 경우가 릴레이 확진이라고 했는데, 그게 또 우리가 됐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로서 2주 재택치료를 해야만 했다. 가뜩이나 육아+집안일 콤보로 스멀스멀 우울한 감정이 밀려오던 나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출근하는 남편, 등원하는 아들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요 며칠 동안은 이제 한여름밤의 꿈이 됐다. 내내 같이 있어야 하고 내내 밥을 같이 먹어야 하고 내내 같이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주 달갑지만은 않았으니까.


목에 깊숙하게 넣어 검사하니 두줄 나왔다.

기어이 남편은 목이 많이 부어 말하기 힘들어했고, 감기약에 취해 잠드는 시간이 늘어났다. 더불어 집에서 답답해하며 왔다 갔다 온 사방을 탐험하고 다니는 아들을 케어하려니 스트레스가 자꾸만 치솟았다. 목소리는 자꾸 하이톤이 됐고,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어서(이미 아기 태어날 때부터는... 못 자는 날이 많았지만) 신경은 더 예민해졌다. 더 최악은... 남편이 확진 판정을 받고 난 다음날 나 역시도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는 거. 그렇다. 나도 코로나 확진자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코로나 확진자가 말하는 그 전조증상. 목이 갑자기 따끔거리고 열이 나며 몸에 근육통이 오는 그런. 그래서 자가진단키트로 깊숙하게 코를 쑤시고, 다시 새로 뜯어서 목도 쑤셨다. 코로 했을 때는 음성이었지만 목으로 하니 양성이 나왔다.


양성 반응이 나온 자가진단키트를 비닐에 넣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신속항원검사를 하러 동네 병원을 찾았다. 가격은 진료비 포함 5천 원. 방호복을 입은 의사가 따로 마련된 곳에 한 사람씩 불러 콧속을 마구 쑤셨다. 내 차례가 됐고 콧속을 찌른 의사는 내게 '음성'이라고 말했다. 내가 음성이라고? 우리 집엔 코로나 확진자가 2명이나 있고 그들과 같이 맞대고 잠들었으며, 밥도 같이 먹었으니 양성일 수밖에 없는데! 내가 음성이라니 황당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난 양성 판정을 받긴 했지만... 음성이라고 판정됐을 때 의사에게 소견서라도 써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증상도 뚜렷한데 음성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고 PCR 해주는 병원 선별 진료소를 찾아갔다. 거기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전 병원에서 하필이면 현금결제를 해서 영수증도 없었고, 확인서랄지 뭔가 증명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비급여로 10만 원가량을 내고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무료 선별진료소를 갈까 했지만 집에서 너무 멀었고 남편은 이미 자가격리 중인데 날 태울 수도 없는 것이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운전을 배워둘 걸. 도로연수 그냥 다시 해둘 걸. 무사고면 뭐해.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걸. 증상이 초반이면 신속항원검사로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했으니 하루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날 찾아간 병원에서 결국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미 집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고, 같이 살고 있으니 코로나 확진받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이제 아들은 못 나가니까 너무너무 답답해하고, 현관문으로 가서 친구 친구~ 거리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되었지만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 가보다 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그렁그렁 나가고 싶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도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이제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볼 수 있겠지, 나를 위해 나를 좀 돌아보는 시간도 잠시 갖고 엉망이 되어버린 몸뚱이와 스트레스로 얼룩진 내 마음을 달랠 수 있겠지 했는데. 그 작은 바람이 헛된 꿈이 되어버린 건 아마도 이 망할 코로나 때문인 것 같다.


아, 그리고 더 최악인 건 릴레이 확진이다. 차라리 다 같이 한 번에 걸리고 끝나버리는 게 낫겠지 않나 싶을 정도로 순차적으로 확진이 되니까 더 스트레스받는다. 그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는 나가지 못하는 것. 광합성도 하고 아들이랑 한 번씩 답답할 때는 놀이터라도 나가서 뛰어놀게 하면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곤 했는데, 아예 밖에 못 나가니까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다.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걸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걸릴 수밖에' 없다면 '무사히 지나가길' 그저 무탈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길 바란다는 거.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도 새벽에 잠이 깨서 스트레스 만빵인 상태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후다닥 글을 써보는데,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먼 이야기가 아닌 가까이 나도 걸릴 수 있구나 느낀다. 항상 대비하고 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저 무탈 없이 지나가기를. 이 긴 자가격리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다음 주까지 이어지는 자가격리가 빨리 끝나길 그저 바랄 뿐이다.


그냥... 집에서 좀비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집좀비...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아기자기한 것을 사랑하는 핑크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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