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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note Nov 10. 2023

N잡과 백수, 그 어디쯤 <큐레이터>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자격증도 경력도 없지만 미술을 사랑한다. 아주 오랜 취미이며, 좋은 추억도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우연히 단기 큐레이터 공고를 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사실 큐레이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이 공고는 설레게 만들었다. 단기라 그런지(?) 큐레이터 자격사항이나 경력도 구체적이지 않았고, 미술을 사랑하고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큐레이터라는 직업명은 두렵고 망설여졌다. 전문성이 없는데, 아무리 단기라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괜히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내 손은 이미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마 예전에 갤러리에서 짧게 업무를 한 것이 합격 요인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끄집어낸 경험이 관련성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난생처음 큐레이터라 불리게 되었으니 얼떨떨하고, 긴장도 많이 됐다.


나와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도전과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고 해서 겁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I가 거의 100퍼센트다. 낯선 환경과 직무에서 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첫날은 불안하고 떨리고, 안절부절못했다. 적응을 하는 것도 알아가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고 피해를 끼치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약간의 스트레스도 생겨버렸다.

구체적인 업무는 담당 부스에 상주하며 관객들에게 작품과 작가에 대해 설명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포트폴리오를 정독하며 작품을 이해했지만, 큐레이터로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척 난감했다. 그래서 주변 부스의 큐레이터를 유심히 살펴보고 따라 했다. 앉아 있는지, 서 있는지, 말을 어떻게 거는지, 관객에게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는지 등 작은 움직임까지 보고 그대로 적용했다. 조금 말이 트인 큐레이터분에게는 나의 무경력을 고백하며 사소하지만 어려운 부분들을 질문하기도 했다.


경력이 없는 것은 온전히 나의 부담이었다. 다들 익숙하고 능숙한 모습이었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모두가 프로처럼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큐레이터는 배우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감독이 만든 작품을  표현해 내면서 관객에게 전달해 주는 .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관객분들에게 전달하는 방식도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자칫 왜곡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들이 하나의 대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다양한 대답과 시선이 존재한다. 나의 말이 작게나마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면  뿌듯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판매하는 경험은 무척 짜릿했다.


관계자로 일하면서 관객으로 느낄 수 없던 시선과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롭게 들려오고, 어쩌면 아름다운 것은 이미 무언가로부터 만들어진 것인가 생각하면서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새로웠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미술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고, 오히려 내가 컬렉팅이 하고 싶어졌다. 관심만 있던 것에서, 더 가까워지고 용기가 생긴 느낌이다.


N잡은 잘 모르겠지만 미술이 더 좋아졌고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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