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처럼 혼자 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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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지 말고 침묵하기
모든 질문이 숨죽이고
이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침묵의 힘줄을 단련하다가
침묵이라는 말도 우선 지우고
부서진 침묵의 뼈에
차근차근 애도하며 눈 꾹 감고
하루를 다 인내할 것
두 개의 동공을 찢어발겨도
자꾸만 더 멀리서 짙어가는
해질녘을 혼자 무찌르기
넓게 깊게 번지는 붉은 노을을
허공처럼 그냥 앓기
죽을 때까지
혼자 앓고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허공이듯
텅 비어버리는 일은
인내심의 유일한 비결이 되리
하늘이 저무는 해를 견디고 있을 때마다 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해서 이맘때가 무슨 죄가 있나요 우리의 눈동자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펑펑 타버리던 저녁놀이 무슨 죄가 있나요
하나마나한 얘기 그만두고
내 마음의 서랍을 싹 교체해 버리는 방법을 배울 것
이제는 밤이 다 내려왔으니
차분하게 내 얼굴에 덮어두고
침묵처럼 무겁게 그을려서
밤처럼 까맣게 어두워지기
그대, 오직 평온이 깃들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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