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는 어렵지만 아는 척은 쉬워서 쓰는 글
자살클럽 (2002)
기묘한 서커스 (2005)
노리코의 식탁 (2005)
러브 익스포져 (2008)
차가운 열대어 (2010)
두더지 (2011)
지옥이 뭐가 나빠 (2013)
도쿄 트라이브 (2014)
리얼 술래잡기 (2015)
러브 앤 피스 (2015)
소곤소곤 별 (2015)
모두가 초능력자 (2015)
안티 포르노 (2016)
0.
우연히 본 라디오 스타에서 남주혁이 영화 두더지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목부터 이상하고 어려운 영화라며 조리돌림을 한 모든 출연진과 게스트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남주혁이 <두더지>라는 일본 영화를 보다가 한 시간을 못 버티고 잠들었다는 이야기에, 출연진은 시상식에서 상을 타는 어려운 영화들이 있다며 토크를 이어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노 시온의 영화는 심오한 고민 아래에서 만들어진 철학의 산물이 아니다. 그의 영화 이미지는 (사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직관적이며 때로는 즉흥적으로 보인다.
1. 해체되다 못해 널부러진 가족(들)
소노 시온의 <자살 클럽>을 말하자면, 역시 54명의 여고생이 신주쿠역에서 자살을 하는 씬이 떠오른다. 남들에게 무관심한 도쿄의 일상적인 어느 날, 갑자기 다수의 '교복들'은 손을 맞잡고 플랫폼에 일렬로 늘어선다. 마치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외치는 말. 하나, 둘, 셋.
도쿄의 '일상'을 대변하는 지하철은 그렇게 손쉽게 학생들의 몸을 조각내고, 플랫폼과 사람들의 몸에 피를 흩뿌리고, 잘린 손 토막을 날려댄다. 그들의 자살 사유는 불분명하다. 단지 그 죽음의 배후에는 '일본'이라는 일상적 풍경과 부서진 가족 제도의 파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소노 시온의 영화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자주 그 힘을 잃고 무너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로 점철된 영상이 가득한 <기묘한 서커스>, 54인 집단 자살의 배경처럼 보이는 <노리코의 식탁>, 아버지에게 고해성사하기 위해 몰카를 찍는 아들의 이야기인 <러브 익스포져> 등. 하나 하나 집어가기에는 너무나 많기에 그만하지만, 그의 영화 속에서 가족 공동체는 사회가 요구하곤 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는 매우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이는 또 다른 일본의 영화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무너진 가족에게서 비애와 안타까움을 그려내고, 다시금 가족의 이름으로 갈등을 봉합하며 미래를 약속하는 것과 매우 비교된다. 소노 시온이 인터뷰를 통해 "일본과 일본 문화를 혐오한다."고 한 것에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오타쿠 문화가 상징하는 일본문화를 저격한 것인 동시에, (애니메이션이 아닌) 현재 일본 영화의 최전선에 선 고레에다 영화에 대한 조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2. 그 중 제일은 사랑이라
소노 시온은 무너진 가족 공동체를 대신해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외친다. <러브 익스포져>의 말미, "고린도 전서 13장"을 외치는 대사는 소노 시온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의미한다.
무너진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내기 급급했던 그의 영화 세계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결국 '사랑'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러브 익스포져>는 무너진 가족부터 사랑을 통한 회복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수 차례의 편집 요구와 수용에도 불구하고) 결국 4시간을 넘은 런닝타임을 할애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후 (지진으로 무너진 후쿠시마에 외치는 응원가이기도 한) <두더지>의 엔딩 속 "간바레" 역시 그 근원은 사랑이다.
<지옥이 뭐가 나빠>, <도쿄 트라이브>, <러브앤피스> 그리고 <모두가 초능력자>는 열정과 우정 같은 조금은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키워드를 담아낸다.
소노 시온이 그려내는 사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려내는 '위로하고 응원하는 가족간의 사랑'보다는 더 개인적이고 더 저차원적인(!) 모습을 보인다. <두더지>의 케이코가 보여주듯, 소노 시온이 그려내는 사랑의 모습은 직접적이고 직선적이고 헌신적이다.
3. 소노 시온의 변신(?)
그런데 이렇게 '병신 같지만 멋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던 소노 시온은 한층 더 고민한 흔적이 '보일락 말락'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가 불만이라고 말하던 '여성을 억압하는 일본 사회'를 지적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소노 시온. <리얼 술래잡기>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일방적 대상화와 소비를 지적하는 한편, 이를 벗어나는 길이 오로지 자살뿐임을 보이며 일본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을 영화로 만든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여성의 몸'과 '여성의 속옷'을 눈요기로 소비할 뿐인 <모두가 초능력자>를 만든 소노 시온의 행보는 의문을 자아낸다.
반드시 10분에 한 번은 섹스신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칙을 가진 로망 포르노(과거 일본에서 유행한 저예산 에로영화)의 리부트에서 당당히 '안티'포르노를 선언한 <안티 포르노>. 소노 시온은 로망 포르노의 품 안에서 성관계를 즐기지만 이를 억압하는 부모(그리고 사회)의 압박에 갇혀 버린 사람의 분열증을 그려낸다. 그를 예술가로 본다면, 억압하는 환경과 이를 토해내듯 외치는 울분 그리고 그조차 삼켜버리고 소비하는 사회에 대한 환멸은 이해하지만,(소노 시온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의도와 달리) 이 영화에서 조차 소노 시온의 '페미니즘 코스프레'는 실패한다.
안타깝지만 '일본에서의 여성'에 대한 그의 인식은 이를 대놓고 소비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 뿐, 여전히 크게 발전한 모습은 아니다. 그는 당당히 섹스를 말 할 자유를 외칠 뿐, 여전히 자신이 다루는 문제에 대한 사려 깊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소노 시온은 나름의 변신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려 했다.
소노 시온의 '불완전 철학쇼'는 보기에 썩 안타까운 춤사위다. 그가 앞의 영화에서 보여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의 신작 소식에 기대감이 떨어지는 이유다.
2.5 - 자살 클럽
2.5 - 기묘한 서커스
4.5 - 노리코의 식탁
5.0 - 러브 익스포져
4.0 - 차가운 열대어
4.0 - 두더지
4.5 - 지옥이 뭐가 나빠
4.0 - 도쿄 트라이브
3.0 - 리얼 술래잡기
3.5 - 러브앤피스
2.5 - 소곤소곤 별
1.5 - 모두가 초능력자
3.5 - 안티 포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