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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수 Mar 09. 2024

내 인생 시트콤

네 인생 진짜 시트콤 같다.


2018년 어느 날, 호주 멜버른 33 Mackenzie St 404호의 마스터룸에 임시 거주하던 P는 그의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에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정의당하고(?) 만다.


P는 어릴 때부터 '틀'을 정말 싫어했다. 그것이 사람과 생각의 범위를 제한한다고 느꼈다. '남들이 다하니까 하는 것'을 P는 경멸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세상을 대했지만 세상은 P의 입맛에 맞게 변해줄 리 없었다. P는 자퇴하고 싶은 마음을 꽁꽁 감추고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P는 대학도 곱게 가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선생님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영화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언젠가 가족들과 보러 간 영화에 마음을 홀라당 뺏겼기 때문이다. 세상엔 온통 영화와 자신만이 존재했다. 그렇게 영화와 친구에 빠져 살던 어느 날, P는 다시금 어떠한 틀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P는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P는 휴학계를 낸 뒤 돌아가지 않았다.


P는 자유로웠다. 일 하고 싶으면 일했고, 일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세상은 너그러웠다. 나이 어려 가진 것 없는 자에게 베푸는 기간 한정 시스템임은 꿈에도 모르고 P는 그것을 철석같이 믿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본 P는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경로를 이탈해도 한참을 이탈한 오류 난 내비게이션의 GPS 같았다. P는 조금씩 무서워졌다. 작은 바람에도 뿌리째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P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이 모두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P는 이것이 자신이 '틀'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범주에 들기 위해 애썼다. P는 그렇게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것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부리들은 하나씩 나타나 P를 넘어지게 만들었다. 입사를 약속받고 P는 두 달 동안 본인에게 주어질 업무에 대해 공부했다. 본인의 주력 업무가 아니었지만 P는 본인의 일을 사랑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망의 첫 출근날, P는 경영 악화의 이유로 출근한 지 4시간 만에 입사 취소를 통보받는다. P는 회사의 요구로 이사도 했고, 그동안에 합격한 회사도 가지 않았다. 생계형 개발자가 된 P는 다시금 고장 난 GPS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구사일생으로 겨우 찾아들어간 회사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부정으로 망해버렸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P는 2018년 호주의 어느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P는 어떻게 되었냐고? P는 여전히 고장 난 GPS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것은 본인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똑바른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는 거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시트콤처럼 주인공과 그의 인생을 응원하고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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