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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휠 Jan 25. 2023

취업은 멘탈싸움

취업은 기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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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는 겨울방학 인턴을 채용하기로 한다. 이번 인턴은 장애인만 채용합니다. 과연 누가 채용되었을까.

인턴 채용기가 궁금하다면 > P사 인턴 채용기


이번 글은 핀휠 겨울인턴 알파하의 이야기입니다.


시험 기간으로 쓰러져 가던 알파하, 어느 날 수상한 연락을 받게 되는데…
교수님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한 대학생이 인턴으로 들어오다.


<알파하의 우당탕탕 핀휠 생존 일지>



12월 초, 핀휠의 심상치 않은 연락


흔히들 시험 기간 때에는 공부 빼고 모든 게 다 즐겁다 말하지 않던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수님들은 다 본인 수업만 듣는 줄 아신다. 과목별로 쉬지도 않고 계속 쏟아져 나오는 레포트, 팀 과제들…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직업은 교수님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마감 기한도 다 겹쳐져서 좀 많이 울고 싶었…아니, 씩씩하게 해치워나갔다. 큼.


과제, 시험 등으로 언제부터인가 뒤바뀌어버린 낮과 밤… 그리고 의욕 상실한 나. 정말 이때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학교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절실했다.


…엥? 휴식과 새로운 경험? 둘이 너무 다른 거 아닌가 싶겠지만, 

여기에서 휴식은 정말 말 그대로 체력 회복을 위한 휴식을 말하는 것이고, 새로운 경험은 음… 그동안 나는 학업, 학과 동아리, 봉사 활동 등 주로 학교 내부에서만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매일 보는 학교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고, 20대 초반이기에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이렇게 생기와 학점 모두 잃고 있었던 나에게, 이 기막힌 타이밍에… 카톡!

핀휠로부터 심상치 않은 연락이 온 것이었다.



우당탕! 인턴직 지원 결심하기까지


안녕하세요 알파하님, 저희 핀휠 인턴직 관련하여 모집 공고가 나와서..


오 인턴? 간만에 생기 잃은 눈에 안광이 생겼다. 곧바로 모집 공고 링크를 눌러 확인해 봤더니, 그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근무 기간이었다.


세상에 2개월? 급 호감도 상승. 보통 인턴 하면 반년 또는 1년 정도 하는 경우가 많길래 나중에 휴학하면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 갖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굳이 휴학 안 해도 그냥 방학 기간 동안 할 수 있잖아? 아싸.


이미 면접장에서 인재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있었는데

공고문을 읽고 있는 사이에 연락이 더 와있었다.


…맙소사, 내 종강일이 서류 전형 마감일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대학생에게 종강일은 모든 시험이 끝나는 날이자, 동시에 하얗게 불태우고 피곤에 찌들어서 쓰러지는 날이다. 할 수 있을ㄲ… 젠장. 고민할 시간이 없다. 빨리 과제, 시험부터 싹 해치우고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아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막 지원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 핀휠 프로그램에 꽤 참여하기도 했었고, 그때마다 줄곧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진심인 회사라는 게 느껴져서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간도 딱 적당하고, 안 그래도 궁핍한 지갑 사정에 알바를 알아보고 있기도 했고.. 이런, 돈 없는 대학생의 설움이란.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을까? 그래서 할까? 말까? 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흥, 어떻게든 되겠지. 묻고 더블로 가!

묻고 더블로 가


그 와중에 연말 파티에 참여하시겠냐는 연락도 왔었다.

몰라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망했다구요.



혼란의 연속


…하얗게 불태웠다. 오후 4시,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면서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러나, 신에게는 아직 하나의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핀휠 인턴직 지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 뭐 그래도 괜찮다. 아직 내 손에는 레포트를 쓰던 감각이 남아있으니까 훗, 가보자고. 자신감 있게 이력서 양식 파일을 클릭...했지만, 그 자신감은 어디 가고 남은 건 혼란스러움 뿐이었다.

핀휠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양식

나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동물과 그 이유를 서술…? 아니 그리고 친구는 왜 자랑해?

원래도 핀휠이라는 곳이 사람에 대한 관심, 궁금증이 많은 회사인 건 알고 있긴 했는데, 아니 이렇게까지? 그..같이 일하는 사람을 뽑는 거면 능력치 물어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체 대표님은 어떤 분이신 걸까. 제법 위험한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아 이것도 내 멘탈을 흔들려는 고도의 전략인가, 방심하지 말아야지. 후. 차분하게 이력서부터 써봐야겠다.

…근데 쓸 게 없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 ‘경력 사항’ : 빈칸. 당연함 첫 인턴 지원이다.


□ ‘업무 관련 자격증 보유 및 면허’ : … 면허는 없지만 그래도 지난 방학 때 뭐라도 청소년 멘토 자격증 하나 따둬서 다행이다. 휴 완전 빈칸은 면했어. 과연 이게 업무랑 관련된 건가 싶긴 하지만.


□ ‘직무 관련 활동사항’ : 이거다! 올해 100시간 넘게 봉사했는데, 안도와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채워나갔다. 맞다, 핀휠에서 참여한 활동도 다 써야지. 아니 근데 그동안 핀휠 프로그램 재미있어 보여서 참여했던 게 이렇게 이력서로 빌드업이 된다고? 정말 세상일은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봉사 활동 덕분에 완전 빈칸은 피해 간 이력서.. 이거 정말 이대로 내도 괜찮은 걸까? 벌써부터 멘탈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아니다, 취업은 멘탈 싸움이라고 들었다. 입시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취업이라고 크게 다를까, 할 수 있다. 너 글 잘 쓰잖아, 자기소개서에서 잘 쓰면 돼. 기죽지 마라.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아니 기죽은 것 같다. 대체 여기에서 뭘 보고 뽑으시려는 걸까…?

날 혼란스럽게 만든 그 자기소개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동물과 그 이유를 상세하게 써주세요.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와 그때 느꼈던 감정을 들려주세요.

가장 어려울 때 본인을 위로했던 문장이나, 글귀에 대해서 적어주시고 어떻게 위로가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친한 친구들을 어떻게 만났고, 친구들이 어떠한 친구들인지 자랑해 주세요.


나.. 그래도 그동안 내 글쓰기 실력에 나름대로 자부심 갖고 있었는데, 아닌 것 같기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이라… 바로 생각난 동물은 ‘알파카’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항상 나를 보고 닮았다고 부르곤 했는데 항상 나 빼고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아니 인정 못 해. 흥, 알파카 탈락.

(그런데 나중의 일이긴 하지만, 여기 핀휠에 와서도 알파카(오자마자 필명이 알파하 - 알파카 + 내 이름 첫 글자-가 되었다)가 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내 무덤을 내가 판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은 호랑이, 돌고래인데, 음…호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안 닮았는데… (아, 고기 좋아하는 건 아주 똑 닮았다.) 아 맞다, 돌고래가 사람 좋아하고 엉뚱한 애였지? 이거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쓴 동물은 돌고래’였다. 나름 내가 창의성 관련해서 나름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 경험이랑 엮어서 닮은 점을 나열하면 딱 어필하기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것 같아서 후다닥 써내려 갔다.


그리고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적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적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친구들이랑 몰래 빙고 게임하기, 석식 안 먹고 학교 앞 떡볶이 먹기 등 재미있었던 일들이 생각나긴 했지만, 그게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아니다. 아아..뭐 쓰지. 한참 책상에서 머리 쥐어뜯고 있었는데 문득 베란다에 있는 방석을 봤다. 그 방석은 바로.. 갔다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유 콘서트 방석이었다.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3년 간 콘서트가 열리지 않았는데, 그 기간 동안 나는 입시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었다. 내가 입시를 위해서 몇 년 간 콘서트 가고 싶었던 걸 어떻게 참았는데, 원하던 대학교 합격했어도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니.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좌절하던 나에게 더더욱 기적 같은 콘서트였다. 콘서트는 몇 년 간 기다린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을 만큼 정말 끝내줬다. 역시, 가수 공연은 라이브로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인턴 지원할 때 이렇게 시원하게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밝힌다고..?(덕밍아웃)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웠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이기도 했고, 다른 소재를 떠올리기엔 시간도 없어서 써보기로 했다. 콘서트 가기 전 했던 온갖 걱정과 콘서트 후기에 관한 내용으로 적었다.


나는 청각 장애가 있음에도 평소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고 잘 듣는 편이다. 그래도 여전히 못 듣고 놓치는 부분이 있고, 특히 마이크, 스피커와 같은 소리를 잘 못 듣는 편이다. 그래서 콘서트 가기 전에 주의 사항 등을 못 듣고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무대는 다 마이크/스피커로 들리는데.. 음악을 잘 듣고 즐기고 올 순 있을까.. 등 걱정이 참 많았었다. 그런데 막상 콘서트 장에 와보니, 걱정과 달리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공연 시작 전, 내 옆 자리 분께 미리 청각 장애가 있음을 말하자, 그 뒤로는 방송이나 내가 모르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을 때마다 감사하게도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옆에서 설명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첫 콘서트를 후회 없이 재미있게 즐기고 올 수 있었다.


콘서트 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쓰다 보니 괜히 그때의 분위기가 생각나고, 몽글몽글해져서 콘서트 곡 리스트를 찾아서 들으면서 타다닥.. 자기소개서 질문에 차근차근 나의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그러다 제법 뻐근한 목에 이리저리 돌리다가 시계를 봤는데, 어라 시간이 왜 벌써 밤 11시지.


망했… 아니야. 할 수 있어. 제일 어렵게 느껴졌었던 질문 1, 2번 작성했잖아. 근데 이렇게 쓰는 게 맞나, 다른 지원자들은 어떻게 썼으려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범상치 않았던 탓도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애써 무시하고 넘기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서든 집중해서 12시 안으로는 무조건 제출한다.



알파하

현) 핀휠 23'겨울방학 단기 인턴

현)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

소리샘 복지관 등 어릴 때 복지관에 다녔던 기억이 나를 사회복지사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까지 봉사활동 시간만 352시간. 주변에서는 복지사 하지 말라고 말리지만, 아마도 계속 이 길을 가겠지? 청각장애 중증 판정을 받았지만, 어릴 때 인공와우 수술을 한 덕분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배터리가 닳으면 듣지 못할 수 있어 10시간 넘게 바깥에 있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갈 수 있는 삶이라니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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