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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휠 Mar 24. 2023

내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좁고 편협했는지

강예린 기자의 성소수자부모모임 '지인'님 취재기

BFN 기자단: 장애인과 비장애인 대학생이 2인 1조로 팀을 이루어 함께 장애인과 관련된 이슈를 취재하여 기사를 작성합니다. 취재 기사 또는 체험 수기/칼럼, 인터뷰 등을 발행합니다. 



1기가 끝나다


얼마 전 BFN 기자단 1기의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해단식 이후까지 열정을 가지고 최종 기사를 발행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팀들 덕분이었다. 사실 기자단 1기는 나름의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모집도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지막달에는 담당자까지 바뀌게 되었으니, 새로운 담당자인 내 입장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1기의 마지막 1개월을 함께한 나는, 운영자로서 하나의 목적만을 가졌다. 마지막이지만, 마지막이니까 단원들이 더 멋지고 좋은 기억만 가져가도록 하자. 그렇게 해단식 이후에도 두 개의 인터뷰 기사가 더 발행되었고, 오늘은 그중 강예린 기자님의 인터뷰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장애를 넘어 다음 걸음까지


예린 기자님의 마지막 기사 목표는 지금까지와 조금 달랐다.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미디어, 사회시스템 등을 주로 다루던 기존의 BFN 기사들과 달리, 예린 기자님은 활동을 마무리하며 '성소수자부모모임' 관계자를 인터뷰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꼭 마무리 기사는 장애를 넘어 다음 걸음까지 나아가보고 싶었거든요."


BFN 기자단 1기 강예린 기자님 카톡 내용 캡쳐


그렇게 성소수자부모모임 이외에 하나의 단체에도 인터뷰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인터뷰 승낙을 해주신 곳은 성소수자부모모임뿐이었다. 그리고 검색하면 정말 많이 나오는 분인 성소수자부모모임 창립멤버이자 운영위원이신 '지인'이라는 분을 연결해 주셨다. 이런 분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다니,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었다. 예린 기자님과 이런저런 인터뷰 꿀팁들을 찾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인터뷰 날이 되었다. 



첫 인터뷰, 성공적


생애 첫 인터뷰 진행이라 긴장된다는 예린 기자님과 함께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했다. 혹시나 분위기를 풀거나 사회 역할이 필요할까 싶어 함께 줌 인터뷰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내가 없어도 인터뷰는 잘 진행되었다. 함께 인터뷰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지인님의 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 보이셨다. (차가면서도 따뜻한 그런 느낌, 다들 아시죠) 예린님이 인터뷰 초반에 본인의 장애에 대해서 담담히 소개하고,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계기에 대해 차분히 설명드리고 나니 지인님의 표정이 더 밝아지셨고 자세를 고쳐 앉으셨다. 그렇게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고 인터뷰이인 지인님께서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와 본인의 이야기를 얘기해 주기 시작하셨다. 그저 그런 뻔한 인터뷰가 되지 않았으면 내심 바랐는데, 일단 자기소개부터 성공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인터뷰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호응하거나 말할 내용이 많았던 예린 기자님과 사전 질문 내용에 없는 것들에도 먼저 얘기를 꺼내주시고 마지막에는 본인의 연락처도 주시며 연락하라던 인터뷰이 지인님 덕분에 인터뷰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는 예린 기자님의 이야기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와 적절하게 맞물리는 글이 나왔으면 했다. 예린 기자님 역시 그러한 글을 생각하고 계셨다고 말해주셨고 그렇게 글이 완성되었다. 


여기선 글의 일부를 발췌하여 보여드리고, 인터뷰 기사 전문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통해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인터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내일을 위해서, 

성소수자부모모임을 만나다 발췌


BFN 웹페이지 캡쳐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지적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모임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일상에서 혐오표현을 자주 접한다고 해요. 성인 나이가 되었지만 5살 이하의 지적 능력을 가진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면 ”왜 저런 걸 밖으로 데리고 나와“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요. 소수자로서 그러한 혐오표현을 듣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자들에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인 나는,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외출을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출을 경험했다. 보호자가 없으면 전혀 준비부터 이동까지, 가능한 것이 없었던 탓이다. 그런 외출에서의 어려움은 개인인 좁게는 나의 생활을 제한했고, 넓게는 '내가 여기에 있고, 이러한 불편함이 있다'라고 설득할 기회를 잃는 일이었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본 한 달 평균 장애인의 외출 빈도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대신 싸우는 일' 모든 부모는 크고 작게 그것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일상은 그 자체로 투쟁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여기에 줄곧 있었다고. 앞으로도 살아가겠다고.


모두의 경험과 곪은 자리는 모두 다르다


"누가 혐오의 대상이 되려고 선택을 하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만일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면, 태어난 것만으로 질타를 받고, 조심스러워야만 하는 일상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인권이 향상되고 있는 듯 보이다가 다시 뒤처지기도 하죠. 성정체성은 다양하고 모든 인간은 그 스펙트럼 선상에 있다는 것을, 그 다양성 중 소수는 잘못된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이미 많은 인권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그들은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육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성소수자 학생들이 자신의 선생님이 자신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 지지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견뎌낼 힘을 갖습니다.“ 


장애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디에나 살아가고 있다. 당사자성을 가지는 나조차도 장애가 있는 타인을 대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비장애인에게는 모두 같은 장애인일지언정 모두의 경험과 곪은 자리는 모두 달랐다. '개인은 모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어려움이 따랐다. 각자의 장애 정도와 무관하게 필요한 도움은 모두 다르니까, 함부로 '더 나은 사람'과 '힘들고 불행한 사람'을 구분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에 맞는 지원들이 더 세심하게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법 관련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외에도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 또 성중립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것과 주민등록번호 개정 등 행정적인 문제도 변화가 필요해요. 트랜스젠더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로 인해서 성별이 드러나면서 병원에서의 진료를 볼 때도 편견과 차별을 겪게 되고, 그분들은 그래서 아파도 병원 방문을 못 한다든가, 화장실을 오래 참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외국의 경우, 주민번호에 성별이나 나이가 드러나지 않고,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고 있죠.”


갈 수 없다면 참아야만 했다. 문득 몇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미용실에 가면, 어쩌다 장애인이 됐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것이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로 다가와 도저히 미용실에 갈 수가 없었다. 힘을 빼고 제대로 앉아 있어야 머리를 자를 수 있고, 머리를 감을 수 있다고 짜증스럽게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고개를 푹 숙였고 미용실에 가는 일은 미루고 미뤘다. 언젠가부턴가 앞머리는 집에서 가족들의 손을 빌려 정돈했다. 화장실 역시 그랬다. 사소한 것 하나도 손이 가는 마당에, 푹푹 내쉬는 한숨을 듣고 있으면 참아야 했다. 눈치가 보여 불편함을 참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 보호자의 성별도 문제가 되었다. 눈치가 보였고, 이성의 보호자만이 곁에 있으면 참는 것이 최선이었다. 초등학생쯤 되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면 쉬울 것이다. 성중립 화장실이, 이 모든 것들이 과연 꼭 성소수자의 문제만으로 멈출 수 있을까?


사회가 나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로 지인님은 이런 말씀을 남겨주셨다. "사실 누구나 어떤 관점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 있어요. 다수자의 입장으로 혐오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이 이제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을 해보시고 혐오표현을 뱉지 말아 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소수자들은 교육에서 자신을 배제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법이 지켜준다는 것만으로 주는 안정감과 힘이 커요. 법과 교육이 변화한다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로 바뀌지 않겠지만 존재를 인정받는 것으로도 분명히 의미가 있거든요. 많은 부모님들께서 자녀가 함부로 혐오표현을 하지 않는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아이로 키워주셨으면 하는 바랍니다."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그 자체로 다행스러웠다. 갈 길이 멀지만, 나아갈 곳은 있었다. 누군가는 외면하지만 가야 할 길은 있었다. 뒤가 아닌 앞에. 모두를 지켜주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위협을 느끼지 않는 사회, 모두에게 공포가 아닌 사회가 다가오기를 바란다.


▷ 인터뷰 전문 보러 가기



예린 기자님의 글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몰랐던 장애인의 삶을 함께 녹여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주셨다는 점이었다. 핀휠에서 일하면서, 살면서 만나본 장애인의 수를 훨씬 넘는 장애당사자들을 만나고 함께 놀며 친해지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내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좁고 편협했는지. 내가 모르고 살던 누군가의 이야기, 삶을 접하며 나 또한 성장한다. 회식 장소를 찾다가 세상에 얼마나 턱이 많은지, 맛있는 식당을 발견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은 왜 이렇게 많은지,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지만 얼마나 시끄러운지.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한계뿐인 세상일지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핀휠에서 BFN 기자단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부대끼며 일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대학생 때부터 한 공간에서 활동하고, 팀플을 해보고, 회의하고, 회식 자리를 통해 대화하다 보면 그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의 장애가 혹시나 함께 하는 팀원들에게 민폐가 되진 않을까 고민하다 결국 대외활동 신청도 해보지 못했다는 장애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또는, 장애인 편의보장이 어려워 탈락했다는 탈락사유를 들었다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더 많은 장애학생들이 핀휠을 통해 장애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일상을 경험하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서 주변에 핀휠을 많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저희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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