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해볼까? 워킹홀리데이 도전!

<호주에서 9년 살았다 #1>

by 하루미래

2011년, 한국나이 31세.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로 포장한 해외도피였다.


정말 색깔 없는 삶이었다. 남들과 다르면 큰일 날 것만 같았는지, 나의 20대는 변화와 혁신이 가득한 열정 가득한 삶이 아닌, 그저 군에 다녀오고, 학교에 복학했으며, 해외 어학연수를 경험하고, 취직을 하여 결혼을 했다.

적다 보니 뭔가 많이 한 것 같은 20대지만 그저 무색무취의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20대에 계획적으로 살지 못했던 이유로 결혼 후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와이프와 함께 힘을 내서 잘 살아봐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빚 독촉은 계속되었고 삶은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관해서 듣게 되었다. 같은 직장 동료가 호주에서 살았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데, 마음속에 흡사 옛날 많은 사람들이 외치면 떠난 '아메리칸드림'이 생각나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관련정보를 찾아보니 당시에는 만 31세까지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할 수 있었다. 나는 만으로 30세.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와이프를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테솔자격증을 꼭 따오겠노라고 설득했다. 많은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 사랑과 신뢰의 힘으로 허락을 받고 나 홀로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많이 울었던 쓸쓸했던 공항에서의 헤어짐을 뒤로하고 처음 밟는 호주땅은 무척이나 더웠다. 겨울이었던 한국과는 다르게 한창 더운 여름이었다. 공기부터 다른 호주, 모든 게 영어로 적혀있는 동네, 지나가는 키 큰 호주인들 등 지금 호주에 도착했구나 하는 기대감과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풍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첫 브리즈번 생활 1개월은 말 그대로 험난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브리즈번에서 일을 구하기란 참 어렵고 어려웠다. 이력서 100장을 뽑아서 들고나갔다.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했기에 무작정 카페, 레스토랑, 옷집, 등등 보이는 대로 찾아들어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연락이 돌아오는 곳은 없었다.


한 달 예정하고 들어간 셰어하우스에서는 방세를 지불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는데, 지갑은 텅텅 비어갔다. 한국에 있는 와이프에게 절대 손을 벌리지 않겠노라고 확언을 하고 온 상태라 절대 전화할 수 없었다. 셰어집주인과 저녁에 맥주를 마시면서 모닥불에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분명 좋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위안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농장'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브리즈번이 있는 곳은 호주의 퀸즐랜드. 호주 농장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농장 중에서도 유독 퀸즐랜드에 많은 작물이 재배된다는 것은 그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였다.


커뮤니티에서 만난 호주 마미에게 조언도 구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긁어모아 지금 현재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테솔자격증을 위해 호주에 왔지만, 우선은 의식주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 나이 만 30세, 호주에 도착한 지 1달여 만에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목, 금 연재